[프로불편러] 한국식 '같이먹기' 식문화 어떻게 봐야 할까

큰 프로젝트를 끝내고 뒤풀이 회식을 하는 자리. 어김없이 술잔 돌리기가 시작됐다. 연구원 노수진(31ㆍ가명)씨는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열 명이 술잔 하나를 십여 번 돌렸을까, 갑자기 노씨 옆자리에 앉아있던 A씨가 황급히 화장실에 뛰어갔다. 다시 돌아온 A씨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자마자 노씨는 그가 속을 게워내고 왔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데 A씨는 돌아오자마자 또 같은 잔으로 술을 마신 뒤 노씨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노씨는 순간 ‘싫다고 말하고 욕먹은 뒤 끝낼까’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B형 간염 때문에 더 이상 쓰면 안되겠어요”라며 상황을 넘겼다. 물론 B형 간염이 술잔 돌리기로 전염된다는 통념은 사실과 다르지만, 아직까지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수법이 잘 통한다.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서 마시는 것이 요즘 회식 풍경이지만, 일부 자리에선 여전히 ‘술잔돌리기’ 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찌개 하나로 나누는 것, 정이냐 침이냐

음식을 같이 먹는 ‘한국식’ 식문화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술잔 돌리기뿐 아니라 찌개 하나에 숟가락을 넣어 직접 퍼먹는 것도 서로의 타액이 섞여 비위생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이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같이 먹는 것이 서로간의 연대의식을 높이는 좋은 전통이라고 말한다. 직장인 유수원(40)씨는 “식구(食口)가 같이 밥 먹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처럼 한국사람은 같은 찌개를 나눠먹어야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정 떨어진다”고 말했다.

같이 먹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이런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직장인 박유진(29ㆍ가명)씨는 “찌개에 숟가락을 넣는 게 싫다고 말하면 내가 좀스럽고 별나게 보일 것 같아서 웬만해선 조용히 먹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비위생적일까?
팔팔 끓는 찌개를 숟가락으로 함께 퍼 먹는 것은 친밀감을 나누는 방식으로 여겨져왔다. 제주 멸치찌개.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이 먹는 음식문화는 정말 비위생적일까?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급적이면 따로 떠 먹는 것이 좋다”는 답을 내놨다. 같은 반찬이나 찌개를 먹는다고 해도 당장 병이 전염될 정도로 위험하진 않지만, 위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균 등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간염의 경우 음식을 나눠먹어서 전염이 된다는 것은 아직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또한 찌개를 같이 먹는 것보다 술잔을 돌리는 풍습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국물 음식은 끓여먹는 것이지만 술잔의 경우 회 같이 익히지 않은 음식을 안주로 먹을 수도 있어 감염위험이 더 높고, 과음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당장은 사회생활 때문에 어렵더라도 천천히 분위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전통

같은 찌개를 먹는 것이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건 알겠지만 마음 한 켠엔 ‘그래도 정을 나누는 고유의 전통인데’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에 숟가락을 찔러 먹던 우정 어린 추억은 대부분 갖고 있지 않은가.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에 따르면 그러나 이런 식문화가 꼭 ‘전통’인 건 아니다. 황씨는 “조선시대에는 독상을 두고 제각각 자신만의 밥상으로 먹었으며, 이는 평민들의 삶 까지도 적용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녀유별ㆍ장유유서 등 유교식 생활질서가 식탁에까지 적용됐다는 것이다.

1936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독상제도를 버리고 가족이 한 밥상에 모여앉아 밥을 먹자’는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독상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말부터다. 당시 총독부는 물자를 아끼자는 이유로 겸상을 장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한 공출로 실제 식기가 부족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론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되면서 냄비 하나를 두고 통째로 먹는 게 일상이 됐다. 이후 같은 식탁, 같은 반찬을 공유하는 문화가 우리의 오랜 전통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같이 먹자, 마음으로도

같은 반찬을 먹는 것이 유구한 전통은 아니라고 하니 꼭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줄어든다. 그러나 2017년 현재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가 남아있다. 결국 어느 방식을 선택하든 한 쪽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밥상 문화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걸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 쪽의 ‘인내’다. 박유진씨는 “회식 때마다 오뎅탕을 사수하기 위해 찌개에 숟가락을 넣기 전에 각자 그릇에 다 나눠준다”며 “졸지에 ‘여성스럽다’는 이상한 칭찬을 받았지만 밥은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사 때마다 매번 참긴 힘든 일이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같이 먹는 문화를 좋아하는 취업준비생 오창훈(31)씨는 “친구가 국물을 같이 먹는 게 싫어서 늘 몰래 피해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 친구와의 밥을 먹을 때는 각자의 그릇에 떠먹기 좋은 음식을 고르기 시작했다”며 “이왕 같이 먹는 거라면 서로의 취향에 맞춰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빠에야(왼쪽)와 일본식 전골요리 나베는 가족의 정을 다지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동시에 숟가락을 넣어야만 정이 생긴다는 고정관념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교익씨는 “스페인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역시 빠에야, 나베 등 한 냄비에 조리해 먹는 요리로 가족애를 나누지만 그들이 그 냄비에 숟가락을 같이 넣어 먹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하며 “한 냄비가 아닌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 ‘같이 먹는 정’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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