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격만 최대 1000만원인데
업체 관계자 돌연 잠적 아수라장
행사 단순화 목소리 커지기도
지난 8일 일본 교토부 교토시에서 열린 성인식 행사. 주로 기모노 복장이지만 양복 차림도 보인다. 앞줄 오른쪽 끝은 1998년생 피겨스케이트 선수 미야하라 사토코. [교토=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은 한국과 달리 ‘성인식’을 요란하게 치른다.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을 ‘성인의날’공휴일로 지정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제히 축하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여성 예비성인들은 소매가 긴 ‘후리소데(振袖)’라는 화려한 기모노(着物)를 입고 이 행사에 참석한다. 최소 20만엔(200만원)부터 비싼 것은 100만엔(1,000만원)에 이르는데다 하얀 목도리와 가방, 양산 같은 장신구에 화장품 비용까지 큰 돈이 들어가다 보니 수 년 전부터 준비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 ‘성인의날’(8일)에는 큰 혼란이 발생했다. 일본의 대표적 기모노업체가 사전통고도 없이 영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橫濱)에 본사를 두고 도쿄 하치오지시,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후쿠오카시 등에 점포를 갖고 있는 ‘하레노히’에서 대부분 점포관계자가 잠적해버린 것. 이날 아침부터 고객들이 기모노를 찾지 못해 곳곳이 아수라장이 됐다. 몇 년간 준비해온 여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부모들은 경악했다. 일본 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영업중단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이날 NHK 톱뉴스로 오를 정도로 일본에선 큰 사건이었다. 한 여학생은 “마음에 드는 옷감과 무늬를 위해 60만엔을 들여 2년전 예약했는데 새벽부터 가게 문이 잠겨 있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기모노는 입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수개월전 예약한 미용실에서 새벽부터 준비해야 한다. 특히 후리소데 판매ㆍ임대업체들은 2년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젊은 인구가 줄어들어 고객 쟁탈전이 거세지면서 사진 스튜디오와 결혼식 업체가 합류해 출혈경쟁을 하고, 계약을 선점하려다 보니 기모노 영업시기가 갈수록 앞당겨진 결과다.

현재와 같은 성인식이 자리잡은 것은 2차 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 사이타마(埼玉)현 와라비시에서 ‘청년축제’를 개최한 게 시초다. 패전의 상실감에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는 취지가 전국으로 확산됐는데 그때 만해도 기념식 복장은 남자가 ‘국민복’(군복 비슷한 복장), 여성은 ‘몸뻬’였다. 그러다 2차 대전 중 사치품이 금지돼 축소된 의류업계가 부흥책으로 1950년대 중반 여성 성인의 통과의례로 후리소데를 입는 유행을 일으키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올해 성인식 혼란을 계기로 화려한 ‘기모노 잔치’를 다시 보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부에서 등장하고 있다. 다른 기모노 회사에서도 2년 뒤 입기 위해 전액을 납부한 조기계약 취소 요구가 일어나는 등 소비자 분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성인식 자체를 단순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초(太地町)에선 성인식 개최를 1월에서 8월로 옮기고 간편한 복장으로 참가토록 해 경제적 이유로 기모노를 못 입는 가정을 배려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상당수가 값비싼 기모노가 없어 성인식을 결석하는 점을 되짚어보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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