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1일 유럽연합(EU) 중심지인 벨기에 브뤼셀시의 기념 조각물 아토미움 주변에 모인 시민들이 새해 첫날을 축하하는 폭죽을 지켜보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단일화폐를 채택한 유로존은 맑음, 영국은 흐림.”

올해 유럽의 경기 전망을 짚어 주는 말이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가운데 19개 나라가 자국화폐를 폐기하고 단일화폐 유로를 쓰고 있다. 그런데 2017년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영국을 0.7%포인트나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유로존 2.2%ㆍ영국 1.5%, EU 집행위원회 전망). 유로존의 영국 추월은 역사상 처음 있는 현상으로, 2010년 그리스의 경제위기로 촉발된 단일화폐 유로존이 경기 회복세를 보이면서 발생했다. 올해와 내년까지도 유로존의 경제는 영국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 차례나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는 현재대로라면 올해 8월 구제금융을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지난 8년간 공공 부문 임금을 최소 20% 정도 삭감하고 복지 축소, 대규모 민영화 등 긴축정책을 실행해 왔다.

반면에 EU 탈퇴(브렉시트)라는 미지의 모험을 감행한 영국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2016년 6월 23일 ‘EU잔류ㆍ탈퇴’ 국민투표 전 물가상승률은 0.5%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3%를 기록했다. 물가상승의 대부분은 수입물가가 주도했다. 농산물과 공산품의 절반을 수입하는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가 미 달러와 유로에 비해 최소 10% 떨어져 수입물가가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인상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임금상승률은 -1%로 서민의 주름살은 깊어만 가고 있다. 영국은 EU 탈퇴 후의 과도기와 유럽과의 새 통상 및 안보관계 협상도 올 10월까지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집권 보수당이 이 문제를 두고 거의 내전에 준하는 분열을 보이면서 협상을 이끌어야 할 테리사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위기에 빠져 있다.

전진이탈리아당의 지도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1일 RAI방송 '포르타 아 포르타(집집마다)' 녹화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

물론 유로존 경제를 낙관만 할 수는 없다. 몇 가지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3월 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이 고비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에서는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승리해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의 집권을 막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이탈리아가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탈리아의 부동산ㆍ언론 재벌이자 세 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2011년 탈세 혐의로 기소돼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당은 극우 북부동맹, 형제이탈리아당(두 당 모두 반이민ㆍ반이슬람 정당)과 3당 공동 공약집을 작성 중이다. 세 당은 액수에 관계없이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일률 과세에 합의했다. 이 공약은 부자에게 매우 유리하며 대규모 감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6년 말 이탈리아 공공부문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어 유로존이 규정한 60%의 두 배를 훨씬 초과했다. 재정이 취약한데 집권을 하기 위해서 이런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또 전진이탈리아당을 제외한 두 당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한다.

지난 1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에선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이 28%로 집권 민주당을 2%포인트 앞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오성운동은 기존 정당이 부패했다며 연정 구성을 꺼리기 때문에 결국 우파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이탈리아는 재정적자 축소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EU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으며 이탈리아발 정치적 리스크가 유로존으로 확산될 우려도 커진다.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마르틴 슐츠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가 12일 연정 사전협상에 합의한 후 베를린 기자회견장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독일의 정부구성이 늦어지는 것도 위험요소다. 지난해 9월 24일 독일 총선이 끝난 지 4개월째이지만 여전히 독일 정국은 유동적이다. EU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독일 정부가 구성되어야 EU도 중장기 틀을 그리고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유로존 재무장관직의 설립과 유로존 예산의 대폭 확대 등을 제안하며 유럽통화 강화책을 제시해 왔으나 독일이 응해야 이런 개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재로서 독일의 정부구성은 빨라야 3월 정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ㆍ기독사회당 연합은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과 대연정 사전 협상을 진행한 끝에 일단 지난 12일 대연정 구성에 기초가 되는 큰 틀의 사전 합의를 이뤄 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당장 사민당 지도부가 21일 개최될 특별 전당대회에서 사전 협상안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 후에야 사민당은 대연정 본격 협상에 나설 수 있다. 최종 연정 합의문도 사민당원 40만명 가운데 과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왼쪽) 폴란드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함께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폴란드와 EU 집행위는 지난해 폴란드의 사법개혁 문제로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지난해 심화한 폴란드 제재 논란이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폴란드의 집권 법과정의당(PiS)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EU는 이에 경고를 보냈다(본보 2017년 8월 4일자 15면 칼럼). 리스본조약 7조에 따라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 집행위원회는 폴란드가 EU의 가치를 위반했다며 제재 절차에 들어갔지만, 일단 28개국의 80%인 22개국이 승인해야 폴란드를 견책할 수 있고 EU기구에서 투표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제재는 당사국을 제외한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이웃 헝가리가 폴란드를 적극 두둔하고 있기에 폴란드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상반기 각료이사회 순회 의장국 불가리아와 하반기 의장국 오스트리아도 제재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이 절차의 추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양자주의 선호 정책으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마당에 EU마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회원국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논리다.

EU발 경제 리스크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정치적 리스크는 남아 있다.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이탈리아발 정치적 리스크가 EU 다른 회원국, 나아가 국제정치경제에 부정적인 연쇄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오랜만에 유럽발 봄을 고대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ㆍ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ㆍ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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