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은 국제사회의 엄중한 대북현실
거세질 북한의 평화공세 대처할 의지 있나
평창 대화는 공짜 아닌 회수해야 할 어음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문제가 마무리됐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대화에 어지러울 정도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이은 남북 고위급회담과 두 차례 실무접촉만으로 이 정도 결과물은 낸 것은 어찌됐건 고무적이다. 게다가 금강산에서의 남북 전야제,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공동훈련 등 예상하지 못했던 문화ㆍ스포츠 교류까지, 지난 보수정부 10년 동안 막혔던 체증이 단번에 뚫리는 기분이다.

남북이 접촉면을 최대한 넓힌다는 데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지적해야겠다. 이 모든 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남쪽이 치른 비용이 작지 않다. 북한의 대규모 선수단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유엔 결의 위반 논란이나 5ㆍ24 조치 같은 대북 경제제재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되레 사소한 편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공동입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남남갈등, 국론분열은 무시하고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다.

반면 북한은 그야말로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 엊그제까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무수히 쏴 대던 깡패국가에서 하루 아침에 평화 전도사로 돌변했다. 남북이 육로로 왕래키로 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할 명분도 챙겼다. 선수는 열명 남짓에 불과하면서 응원단, 예술단 등 딸려오는 식구가 무려 700여명이다. 우리 측 스포츠 행사에 참가한 북한 역대 대표단 중 최대다. 북한이 대화 중간에 내놓은 여러 성명을 보면 깔아 놓은 멍석에 올라앉아 주인 행세를 한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에 대한 논의는 애초부터 철저히 배제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교류에 대한 선의를 북한이 악의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목을 매는 남쪽 입장을 확인한 북한은 앞으로의 군사회담이나 추가 고위급 회담에서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해 올 게 뻔하다.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과 북한 류경식당 탈북자 13명의 송환을 연계한 게 단적인 예다. 실익 없는 이산가족상봉에 관심 없다는 뜻 아니면 거저로는 응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북한이 긴장완화의 조건으로 남북경제교류 재개나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했을 때 정부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한미동맹이나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방법을 찾아보겠다.’ 누차 들었던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북결의를 위반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정부는 생각할지 모르나 그게 바로 제재를 회피하는 편법이고 꼼수다. 제재에 어깃장을 놓는 중국한테서 우리가 수없이 봐 왔던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현실의 엄중함은 한결 분명해진다. 며칠 전 밴쿠버 회의에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넘어선 일방적 제재와 추가적 외교행동을 취하기로 했다”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대북 해상차단을 강화한다는 구체적 행동에도 합의했다. 미국의 대표적 대화론자인 렉스 틸러슨 외교장관 마저 “북한은 이미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에 직면해 있다”며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협상 테이블로 나올 때까지 정권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의 남북대화 제의가 대북제재가 먹히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북한이 대화공세를 펼수록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독선적이다. 원칙과 과정을 훼손하면서까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남북관계에만 좋다면 어떤 것도 희생해도 된다는 시대착오적 가치에다 진보진영이 흔히 갖는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해 볼 것은 다 할 것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아니면말고’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을 벌였으면 매듭짓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그 평가는 향후 군사회담, 고위급 회담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에 대한 치밀한 전략을 우리 정부가 갖고 있어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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