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명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서 한 젊은 여자가 얼굴을 찌푸리고 엎드려 있다. 중년의 여자가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생리 중이거든요.” 여자의 대답, 정확히는 ‘생리’ 부분에서 사람들이 멈칫한다. 그 이상한 기운을 느낀 젊은 여자가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든 남자에게 말한다. “생리가 뭐가 어때서요? 따라 해 보세요, 생리.” 남자들은 겨우 단 한 단어를 입에서 뱉어내지 못해 곤혹스러워한다. 영화 ‘20세기 여자들’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여자들은 어떨까?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는 한 시간 반 동안 오직 생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영화다. 생리대의 변천사며 다양한 생리용품에 대한 여자들의 의견, 국내외의 관련된 법률의 변화까지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볼 때 모종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은, 인류의 절반이 피 흘리는 일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게 큰 소리로 말하는 장면을 이전까지는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생리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생기고 또 공유되는 것을 지켜봐 왔음에도, 눈으로 내 것이 아닌 생리혈을 보고 그 처리의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화면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따라오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지난해 가을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문제가 되었던 생리대와 관련된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도 지난 연말 정부가 양성평등 정책 기본대책을 발표하며 생리대 유해물질 모니터링과 건강 영향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철저한 조사와 더불어, 저소득층과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공급하는 법안과 궁극적으로는 생리용품 무상공급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 영화 속에는 남자 화장실에는 화장실에서 필요한 모든 것, 곧 휴지와 물과 비누가 제공되는데 여성은 그렇지 않은지를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성에게 생리용품은 필수품이다. 하지만 사회가 생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생리대는 주머니에 몰래 담아 가지고 다니다가 귓속말로 생리대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지인에게 테이블 아래로 건네는 비싼 물건이 된 것이다.

이는 발암물질 문제와 관련이 있었던 대부분의 기업이 이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지금도 판매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리가 터부시될수록 생리대의 가격은 올라가고, 도대체 그 안의 어떤 화학물질이 여성의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피의 연대기’에서와 같이, 더 많은 생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초경을 겪은 여성 청소년에게 여자가 되었다는 축하의 말을 건넬 것이 아니라, 생리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의 몸을 잘 다루고 생리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으며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생리를 겪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생리용품이 생리대뿐인 것처럼 정보가 제공되고, 생리에 대한 외부의 반응이 ‘너 오늘 생리해?’라는 멸시의 질문으로만 발화될 때 생리는 여전히 거기 있지만 없는 척 해야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생리통이 심각했던 나는 일회용 생리대에서 면 생리대로 바꾼 뒤 통증이 덜어지는 경험을 했다. 이후 탐폰을 통해서 산화된 피가 피부와 닿지 않을 때의 쾌적함을 경험했으며, 현재는 생리컵으로 인해 생리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가장 덜 인식하고 생활할 수 있는 상태까지 왔다. 이 과정은 오직 생리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구매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행되었다. 좀 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 모든 시도를 할 수 있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배란통과 생리통을 좀 더 잘 다스릴 방법을 알았더라면? 나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잘 피흘리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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