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4>마약 양성소 :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1
구치소ㆍ교도소에서 수감 선배들과
종일 마약 얘기… 전문가로 출소
필로폰ㆍ코카인 등 거래 연락처 공유
검거 전 빠져나가는 방법도 배워
#2
100일마다 감방 옮기는 ‘백일전방’
되레 마약 네트워크 확대 부작용
출소 후 만나면 공짜로 약 주기도

“여기 있다가 제가 마약 전문가가 되겠어요.”

지난 2일 수도권 한 구치소. 박모(49)씨는 항소심 재판을 맡은 변호사에게 수심에 젖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세 살 딸에게 떳떳하지 못한 아빠 꼴을 또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다 마약을 또 만질 수 있겠다.’ 죄를 뉘우치며 갱생의 꿈을 키워 나가야 할 교정시설에서 그는 왜 그런 아찔함에 떨까. 박씨가 실감하는 공포는 그가 구치소에서 산 파란색 표지 노트에서 발견된다. 그 속지에는 전문 분야별 마약사범 연락처로 빼곡했다. 구치소에서 형성하게 된 일종의 ‘마약 네트워크’다.

대한민국 구치소ㆍ교도소가 ‘마약사관학교’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호기심에 마약류에 손댔다가 구속된 초범 투약자가 되레 마약을 손쉽게 구하는 방법만 익혀 ‘마약 전문가’로 출소하는 아이러니가 이곳에서 빚어지기 때문이다.

박씨도 초범이다. 자영업을 하는 그는 “힘들 때 살짝 하면 피로가 풀린다”는 지인 권유로 겁 없이 필로폰에 손댔다가 지난해 10월 구치소에 갔다. 한 방에 있던 마약사범 10여명이 신참(박씨)에게 몰렸다. 저마다 연락처를 주고, 몇몇은 다른 마약사범의 전화번호까지 줄줄 불러줬다. 며칠 만에 신참의 노트 석 장은 ‘마약 인맥’으로 꽉 찼다. 판매자, 알선자는 물론, 의리로 주겠다는 교부자, 중독자까지 무려 24명이나 된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박씨 노트를 보면, ‘신○○ 형님(3XXX)’, 그리고 연락처가 적혔다. 그 아래 ‘향, 교, 대’라는 글자가 작게 써있다. 그 아래 ‘김○○(3XXX)’ 이름 밑엔 ‘향’ ‘밀’이 적혔다. 수감 경험이 있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확인하니, 이름 옆 괄호 안 숫자는 수감번호, ‘향’은 필로폰과 같은 향정신성 약물, ‘교’는 ‘교부’, ‘대’는 대마라고 했다. ‘밀수’를 뜻하는 ‘밀’이란 글자 위 이름만 6명이나 됐다. 한 마약사범 이름 아래에는 ‘코카인’ ‘향’이 적혔고, 채팅앱 아이디까지 적혔다. 또 다른 마약사범 이름 옆에는 출소일로 보이는 ‘(2018. 3. ○)’이, 그 아래 이메일 주소, 中國(중국)’이 쓰여 있다. 그 외 다른 사범들 이름 옆에는 ‘부천’ ‘양재’ 등 사는 곳이 적혔거나, 이미 출소를 한 듯 수감번호 없이 연락처만 적힌 메모도 있었다.

박씨는 “나가서 연락하고 보자”는 공책 속 이름들의 속삭임이 두렵다고 했다. 그들은 마약 인맥과 거래 장소 정보는 물론, 수사기관에 걸렸을 때 빠져나가는 노하우까지 일러줬다. 박씨 측은 “잘못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초범 투약자를 치료 기회도 없이 바로 구속시켜 잔뼈가 굵은 마약사범들과 같이 두면서 종일 마약 얘기만 하도록 하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마약사범은 교정시설에서 ‘파란’ 수감번호 표찰이 가슴팍에 붙여져 폭행 절도 등 일반 사범과 구분돼 따로 수용된다. 일반 수감자까지 마약에 물드는 걸 막기 위한 교정당국의 운영 원칙이다.

그런데 마약사범끼리 한 데 모아두니 수감 동료간 끈끈한 정(情)이 사회생활까지 이어지면서 ‘초짜’ 투약자가 파멸의 길로 끌려가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모(28)씨가 그렇다. 그녀는 21살에 초범으로 간 구치소에서 마약사범들과 2개월 남짓 생활한 뒤 필로폰 중독자로 망가진 처지를 고백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온갖 수소문 끝에 알게 된 판매자에게 시세보다 엄청 비싸게 약을 샀는데, 밖에서 다시 만난 구치소 사람들은 공짜로 약을 많이 줬고 나중에 구입할 때도 훨씬 쌌다”고 했다. 마약세계에서 거래 가격은 사실상 ‘위험수당’ 성격이다. 검찰 자료에 따르면 필로폰 1회 투약량(0.03g) 공식 가격은 10만원이지만, 감방 동료 등으로 만나 믿음이 쌓이면 10g씩 되는 상당한 양도 시세 절반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정당국은 마약사범을 초범자와 재범자, 판매자와 투약자 등을 구분하는 분리수용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끼리 섞이는 마약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교도소에서 100일마다 감방을 옮기게 하는 속칭 ‘백일전방’이 마약사범간 검은 교류를 더 확대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실 법률사무소 진실 대표변호사는 “백일전방으로 초ㆍ재범들이 가는 방마다 그 세계 선배들을 잔뜩 만나고 판매선을 다 따고 나와 출소 뒤 투약과 수감을 반복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마약 노트’에도 판매책과 상습 투약자 다수가 적혔다. 이씨는 “특히, 여자들은 투약자 수가 남자보다 적어 수용시설에 판매자, 투약자 구분이 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노트에 적어둔 사람들 중 지금도 잡히지 않은 판매책이 적어도 5명은 된다”고도 했다. 공책을 없애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씨는 “발이 기억한다. 그들을 1년 안 만나도 술에 취하면 굳이 공책을 안 봐도 어느새 약 주는 데 가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정신병원을 25군데나 다닌 것도 발이 기억하는 장소들을 피해 이사를 그만큼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교정시설의 현실이 마약 중독에 깊게 빠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 20년간 몸담은 윤현준 박사는 “투약자 특성 별로 적절한 치료 개입 없이 교도소로만 보내는 것은 자기 파괴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은 “걸음마 단계인 교정시설에서의 집중 강화치료와 관리가 실효성 있게 확대되고 마약사범이 출소 뒤에도 지역사회에 연계돼 치료ㆍ재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야 현재 40%대인 마약범죄 재발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20대 여성 이모씨가 교정시설은 “마약사관학교”라며 보여준 마약 노트. 마약 판매책, 알선자, 상습 투약자 등의 실명과 연락처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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