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정책 ‘엇박자’ 질타하지만
청와대 정제 안된 목소리가 혼선 키워
뒷감당 힘든 ‘헛발질’ 정책이 더 걱정

사람 좋은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이번엔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협의와 입장 조율에 들어가기 전에 각 부처의 입장이 먼저 공개돼 정부부처 간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엇박자’로 지적한 건 물론 가상화폐 대응책이다. 가상화폐 투기가 날로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자 박상기 법무장관은 지난 11일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목표로 한 특별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즉각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했다. 시총 수십조 원이 증발했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가 들끓고, 투자자 수만 명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몰려 “법무장관 해임하라”며 가상화폐 규제 반대 캠페인에 나섰다.

시장이 출렁이고 항의가 쇄도하자 청와대는 당황했다. 더욱 곤혹스러운 건 가상화폐 개미 투자자 대부분이 정권의 지지층인 ‘2030 세대’라는 사실이었다. 청와대는 시장과 투자자의 원성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가상화폐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차분히 확인하는 대신, 박 장관의 말을 일단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아’다르고, ‘어’다른 미묘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택한, 박 장관에 대한 부인은 시장에 더 큰 혼란을 불렀다. 청와대가 나선 게 오히려 ‘엇박자’ 논란을 키운 셈이다.

사실 이 정부 들어 드러난 정부 내 정책 ‘엇박자’는 대개 부처에서 ‘함부로 입을 놀린’ 탓이라기보다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했거나, 청와대가 부처와 다른 정책 입장을 무분별하게 보인 탓이 더 크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국면에선 가뜩이나 한미, 한중 간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각각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미국의 새 아시아 전략이라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은 한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도 공감 수준의 우리 입장이 반영됐고 외교부도 같은 입장이었으나,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갑작스런 발언이 불거져 큰 혼선을 불렀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대북 해상봉쇄 발언도 송 장관 스스로 수습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즉각 일축하면서 ‘엇박자’ 논란을 키웠다. 외교ㆍ안보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 부처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거론하면 청와대에선 “규제완화 계획 없다”는 얘기가 나왔고, 법인세 인상 문제부터 최근 현안인 보유세 문제에 이르는 경제정책 엇박자 역시 청와대쪽에서 입장과 발언을 남발해 혼선을 증폭시켰다.

대통령은 장관을 통해 국정을 시행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을 뒤에서 보좌할 뿐, 정책 현장에 직접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하지 않는 게 오랜 관행이었다. 그게 국정을 일사불란하게 유지하고, 장관과 부처에 힘을 실어 줘 힘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그런 오랜 관행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청와대 참모들이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그게 끝없는 정책 ‘엇박자’의 원인이라고 본다.

그런데 ‘엇박자’는 정책 시행 이전의 혼선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나마 덜 걱정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정작 두려운 건 ‘엇박자’조차 거치지 않고 대뜸 정책이 강행돼 난국을 부르는 정책 ‘헛발질’이다.

‘헛발질’후보 목록도 만만찮다. 당장 한일 위안부합의 무력화 정책만 해도 장기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득이 될 게 없는 ‘헛발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가 많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이었던 최저임금 대폭 인상도 지금은 수습하기 쉽지 않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사업도 나중에는 국가적 고질병을 남길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엇박자’는 욕 먹으면서라도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헛발질’은 이미 발을 내디뎠으니, 거둬들일 수조차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선해도 ‘헛발질’이 쌓이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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