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리포트, 한국이 위험하다] <2>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1
누범자들 출소 후 가장 힘든 점
“재범 우려” 47% “인간관계 단절” 30%
2013년 수감자 47%가 3년 후 재수감
강력범죄 중 재복역률 가장 높아
#2
사회 나가도 10명 중 7명은
“어떻게든 마약 구할 수 있다”
가족 단절ㆍ사회 냉대ㆍ구직난에
4명 중 1명 “극단적 선택 시도”

“마약을 하는 순간 감옥에 한 발을 걸게 된다. 한 달, 1년 뒤일지 몰라도 교도소에 들어가는 악몽은 되풀이된다.”

마약 중독자 김모(41)씨. 그는 고교 유학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마를 맛봤고, 20대 땐 국내 중견기업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일하던 중 약을 슬쩍 권유한 지인에게 팔뚝을 내주며 필로폰에도 빠졌다. 서른 살에는 집행유예 기간 중에 또 약을 해 2007년 첫 감방생활을 했다. 실수로 큰 교통사고를 냈다고 둘러대면서 직장을 잃었다. 그는 변하지 못했다. 실형을 두 번 더 살았고, 그 사이 참다 못한 아내는 떠났다. 바깥 볕을 쬔 지 약 2년. 그는 대출금을 못 갚아 채권자에게 집도 넘어갔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지금 포르노 편집으로 근근이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남들은 회사에서 차장을 하고 역량을 발휘할 나이에 난 왜 이 모양인가.’ 그는 극단적 선택까지 간혹 떠올리곤 했다. 중독자의 비참한 쳇바퀴.

사회 나가도… 10명 중 7명 “어떻게든 마약 구할 수 있다”

김씨의 마약 인생은 대체로 마약류 사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한국일보는 2016년 하반기부터 1년간 마약 중독자 갱생과 재활을 돕는 종교계 인사 도움을 받아 전국 교정시설 약 20곳의 전과 3범 이상 누범자 3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 271명(남성 266명, 여성 5명)의 응답지를 회수했다.

김씨처럼 ‘마약류를 처음 접한 나이’는 20대가 31.4%(261명 중 8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대 25.6%(67명), 30대 24.1%(63명) 40대 16%(42명) 50대(6명) 60대(1명) 순이었다(10명 무응답). 응답한 재소자의 79.3%(215명)는 40대 이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투약→체포ㆍ수감→투약의 쳇바퀴 생활을 반복한 셈이다. 교정시설을 반복해 드나든 전과 10범 마약 중독자 김모(52)씨는 “40대 이상이면 거의 다 3범 이상인데, 교정시설 안에서 끊고 싶단 생각은 하지만 남은 인맥도, 경제력도 없어 딱히 할 게 없는 무기력감에 결국 접하기 쉬운 마약에 습관적으로 손을 댄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교정시설을 나와서도 한 순간 방심에 마약의 늪에 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처지임을 인정한 마약 중독자들이 대부분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약을 구할 수 있다”는 답이 절반(51.1%ㆍ응답한 266명 중 136명)을 넘었다. 확실한 주변 정리가 어렵고, 동네 선ㆍ후배나 교정시설 동료 등과 은밀한 관계망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위험 부담이 크긴 해도 구할 수 있다”는 답도 19.9%(53명)였다. 결국 마약 누범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마약을 구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7명에 달하는 셈이다. 반면 ‘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답은 28.9%(77명)에 그쳤다.

“교정시설 나온 뒤 또 손댈까 불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교정시설을 나온 후 겪은 가장 힘든 점’으로 ‘재범 우려’를 가장 많이 꼽았다(46.7%ㆍ270명 중 126명). 둘 중 한 명꼴로 회전문 돌듯 다시 투약을 하고, 경찰ㆍ검찰에 체포돼 감방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고, 이러한 걱정은 곧바로 현실이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처지다. 실제 ’교도소 출소자 죄명별 재복역률’(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실형을 산 마약사범이 2016년 다시 수감된 비율은 무려 47.2%에 달했다. 절도(46%) 폭력(33%) 강도(21.6%) 등 각종 강력범죄 가운데 가장 높은 재복역률이다. 인신구속 위주의 엄벌주의 정책으로는 마약 수요 억제에 근본적인 한계가 분명하다는 방증이다.

이들이 교정시설을 나온 뒤 겪은 또 다른 큰 고통(30%ㆍ81명)은 ‘가족과 인간관계의 단절’이었다. ‘사회적 냉대’와 ‘어려운 구직’도 각각 14.8%(40명)와 8.5%(23명)로 그 다음 난관으로 인식됐다. 두 아이의 아버지 김모(38)씨는 관계 단절로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했다. 그는 고교 2년 때 친구가 건넨 진해거담제인 ‘러미나’(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된 덱스트로트로판)에 빠져 30대 중반까지 중독됐다. 처음에 12알씩 먹다가 나중에는 50알까지 삼키는 지경이 됐다. “직장에서 힘들어지니까 더 의존하게 됐다”는 그는 결혼 6개월 차에 집에 중독 사실을 털어놨다가 가정 파탄에까지 이르렀다. 충격을 받고 “그만 하라”는 아내의 경고에도 계속 약을 하다 걸린 그는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장모는 ‘이혼하라’고, 친부모도 지쳐서 ‘눈에 보이지 말라’고 한다”며 “고교생 때부터 약을 했으니 제대로 된 친구들마저 다 떠났다”고 말했다.

약을 계속하는 와중에 이런 저런 상실감이 누적되고, 그럼에도 약을 끊지 못한 극도의 자괴감, 좌절감에 휩싸여 생을 버리고 싶은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전형적인 패턴이다. 실제 4명 중 1명(24.4%ㆍ응답한 271명 중 66명)은 “약에 손을 댄 이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일반의 뿌리깊은 편견과 달리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할 따름이지, 마약 중독과 나쁜 일에 손을 대는 도덕성 상실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없었다. ‘투약을 위해 불법에 가담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10명 중 7명(69.1%ㆍ269명 중 186명)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도 2012년 연구보고서에서 “마약류 사범이 다른 범죄도 많이 저지른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치료 기회 거의 없어요.”

투약과 수감을 반복한 이들은 적극적인 약물치료ㆍ재활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약 중독자 속성상 스스로의 의지에 기대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재범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실제로 10명 중 8명 이상(84.3%ㆍ267명 중 225명)이 “자발적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용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대부분 사회 내에서 스스로 치료 받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비자발적인 약물 중독치료 경험’은 92.6%(응답한 269명 중 249명)가 “없다”고 답했다. 마약사범 치료(교육) 경험이 많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동일 전과가 많은 누범들은 수사기관에서 교정기관까지 각 단계에서 치료 받을 대상으로 선정되는 자체가 어렵다”며 “특히 교도소에서는 초범 등 소수만 완화처우(S2) 수감자로 선택을 받고, 누범자들은 이에 들지 못해 강화된 치료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반면, 마약 수사를 두고는 79.6%(응답한 265명 중 211명)가 “부적절하다” “문제투성이”라고 했다. 교도소 수감 생활을 경험한 마약 중독자의 편견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적절하다” “적절하다”고 답한 비율은 20.4%에 그쳤다.

이는 수사기관의 실적주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누범자들은 검ㆍ경이 마약 공급책과 ‘처벌 수위 거래’를 하면서 단순 투약자를 줄줄이 엮고, 수사 협조를 명분으로 판매자의 핵심 범죄사실을 빼주는 실적 수사에 매몰돼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수십 명의 마약 누범자들은 “마약 판매자가 자신의 고객을 무더기로 넘겨 단순 투약자보다 형량을 겨우 2~4개월만 더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성토했다. 마약 사범인 조모(53ㆍ최근 구속)씨는 지난해 말 국회 앞에서 “판매자를 엄벌해달라”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사기관과 한 편인 정보원(속칭 ‘야당’)을 통해 마약을 하도록 덫을 놓는 사실상 ‘미끼 수사’가 만연하다는 불만을 터뜨린 투약자도 더러 있었다.

마약중독 임상 분야 전문가인 김낭희 박사는 “지금처럼 투약-투옥 되풀이식 처벌위주보단 사법처리 과정에서 중독치료와 함께 재활 출구를 열어줘야 끝도 없는 악순환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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