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주말드라마 '화유기'는 배우 이승기의 군 제대 후 첫 드라마다. CJ E&M 제공

교도소 샤워장을 찾은 재소자가 교도소에선 구하기 힘든 커피음료를 마신다. 동료 재소자가 이 귀한 걸 어떻게 구했냐며 커피음료를 빠르게 낚아챈다. 드라마 흐름상 조금은 어색한, 있어도 그만, 없으면 좋을 장면이다. 딱히 필요하지 않은 모습이 드라마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재소자가 커피음료 병을 든 자세에 힌트가 있다. 커피음료 상표가 정확하게 카메라를 향한다. 간접광고(PPL)를 위한 설정. 최근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지상파 드라마도 부러워할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 장면이다. 꼼꼼한 연출력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도 PPL의 폐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내 드라마의 제작 환경은 열악하다. 외주제작사는 늘 제작비 부족에 시달리고, 스태프는 저임금과 밤샘 노동에 신음한다. 불공정한 제작 과정과 불합리한 유통 구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편성 시간을 앞세워 실제 제작비의 60%가량 돈만으로 드라마를 발주하고, 외주제작사는 스태프 임금과 노동력을 쥐어짜서 드라마를 납품한다. 저렴한 재료로 세트를 만드는 등 갖은 비용절감책이 동원된다. 그래도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거나 수익을 남기기 위해 PPL을 남발한다. 간혹 드라마와 홈쇼핑 방송이 구분 안 되는 이유다. 스태프는 서열에 따라 임금과 노동량이 달라진다. 그래 봤자 큰 차이는 없다. 방송사가 갑이라면 외주제작사는 을이고, 하청업체는 병이고, 스태프는 정이다. 착취의 구조화인 셈이다. 착취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많은 이익과 혜택을 누리는 건 피라미드 가장 위를 차지한 소수 방송사다. “방송사가 때론 사채업자보다 무섭다”는 한 외주제작사 대표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현실이다.

지난달 tvN드라마 ‘화유기’ 촬영장에서 발생한 스태프 추락 사고는 열악한 방송 환경을 보여준다. 한 스태프가 천장에 조명을 달기 위해 올라간 합판을 받히는 반자틀이 부러지면서 해당 스태프가 3m 아래로 추락해 하반신 마비가 된 사고는 방송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싸구려 작업재를 사용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사고 여파로 2주간 방송이 중단된 ‘화유기’는 지난 6일 전파를 다시 탔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와 배우 입장에선 막 시작한 방송이 채 피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일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배우 명성과 관련이 있고(‘화유기’는 배우 이승기가 군 제대 후 첫 출연한 드라마다), 제작비도 회수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했으리라. 하지만 ‘화유기’의 방송 재개는 국내 방송계에 만연한 인명경시와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들의 화려한 외형에 시청자들이 환호하고 방송사는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배금주의가 깃들어 있다.

더 놀라운 건 방송 재개 후 시청률이다. 6일 시청률은 6.9%(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로 1회(5.3%)보다 올랐다. 비위생적인 생산과정을 거친 식료품이나 지나치게 잔인한 과정을 통해 동물로부터 털과 가죽을 얻은 제품에 대해선 종종 불매운동을 펼치는 시민 의식이 방송을 향해서는 발휘되지 않고 있다. 내 몸에 해로운 음식에 대해선 민감하나 당장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선 눈을 감는 세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저임금에 시달리고, 과도한 노동에 허리가 꺾이는 방송 현장 스태프가 자신이거나 자신의 가족이라면 ‘화유기’를 보며 손뼉치고 웃을 수 있을까. 방송사가 믿는 구석은 결국 방송 제작 과정에 대해선 무관심하고 스타들의 현란한 몸동작에만 반응하는 수동적인 시청자인 셈이다.

이럴 때 공허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 나고 방송 났지, 방송 나고 사람 났나.’ 방송사의 갑질을 바꾸는 건 결국 사람을 생각하는 소비자(시청자)다.

라제기 문화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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