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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환자 대부분 중독 부정… 암처럼 초기에 깨닫게 하는 게 중요”

입력
2018.01.17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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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

마약 중독치료 1세대 전문의

“혼자 의지로만 해결 어렵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어찌 됐든 자기 ‘의지’에 달린 문제 아닙니까?”

대저 반문한다. 제 손으로 마약을 접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가족까지 망연자실로 몰아넣는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국민 시선은 저리 곱지 않다. 마약 투약사범들을 보고 또 보는 경찰관과 검사, 판사 인식도 엇비슷하다.

꼬박 30년간 마약 환자들과 부대낀 중독치료ㆍ재활 1세대 전문의 조성남(60) 강남을지병원장은 지난 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달리 말했다. “의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약류 의존자 대부분이 ‘말기 암 환자’ 같은 상태에서 병원 문을 두드린다. 중독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세간의 굳은 상식을 녹일 요량으로 그는 20대에 마약을 시작해 50대 들어서야 끊으려 하는 평균 중독자들의 핵심 특징을 설명했다.

그들은 초기에 스스로 중독을 깨닫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있어도 극히 드물다. “마약 의존자 대부분 본인이 원할 때만 조금씩, 잠깐 슬쩍 약을 하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독 사실의 ‘부정(否定)’이 첫 번째 특징이다. 안이한 인식으로 주변 마약 상습범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투약하다가 결국 중년이 되도록 스스로 망가지는 길로 빠진 줄 모르고 산다.

조 원장은 “투약자들이 치료 받을 결심을 할 적기는 수사망에 걸려 위축됐을 때인데, 우리나라에선 그때 치료 연결이 잘 되지 않고 주로 수용시설에 보내니 초기에 중독을 인정하고 치료 받으려는 환자들이 거의 없다”고 했다. 검진해서 초기에 암이 발견되면 서둘러 조치하듯 약물 중독도 인지할 기회를 빨리 주고 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각한 ‘뇌 손상’이 두 번째 특징이다. 중독 인정 시기가 늦어질수록 끊고 싶어도 일상의 극심한 괴로움을 빌미로 또 약에 손을 뻗치게 된다. 혼자만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거로 조 원장은 필로폰(향정신성의약품) 중독 환자들이 겪는 뇌 기능 파괴 과정을 들었다.

투약하면 기분을 좋게 하는 도파민(신경전달물질)이 단번에 극도로 과다 배출되면서 일상에서 못 느낀 격한 ‘쾌감’을 맛본다. 짜릿한 첫 기억은 뇌에 각인된다. 이후 약과 관련된 자극을 접할 때마다 갈망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다시 투약해도 첫 쾌감에 못 미쳐 점점 양과 횟수를 늘려간다. 내성이 생긴다. 그럴수록 약 기운이 사라지면 일상에서 우울증, 불안증 등 괴로운 상태가 심해진다. 조 원장은 “필로폰은 순간의 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뇌가 보상 차원에서 적절하게 분비하는 도파민 생성 기능을 파괴한다”고 부연했다.

조 원장은 중독 자체에 치료 효과를 내는 약은 없다고 했다. 강렬한 첫 쾌감의 기억과 그 기억을 들추는 온갖 자극을 없앨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먼저 그는 “우울증 등 후유증 완화 약물 치료와 동기강화 치료 등으로 최다 재발 시기인 ‘단약(斷藥) 3개월 내’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파민 생성 기능 등이 정상에 가까워지도록 뇌가 회복되는데 최소 1~2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단약이 1년을 넘기면 재발률은 더욱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꼽았다. “수용시설 내 치료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고, 지역사회에서 마약 사범들의 연계 치료ㆍ재활이 이뤄진다면 재발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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