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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투약 후 환각상태서 강력범죄 저지르기도

입력
2018.01.16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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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각성ㆍ환각 증상

필로폰 스스로 중독 인식 못해

시각ㆍ촉각 등 수십 배 예민해져

중독자, 성관계 위해 투약 빈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필로폰을 투약하니까 하늘 색깔이 너무나 선명해지는 거 있죠. 투약 전에 세상 사물의 채도가 40% 정도라면, 투약하고 나면 70%로 바뀌는 느낌이에요. 영적인 깨달음이나 창작의 희열은 이런 느낌 아닐까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실형을 산 이모(40)씨가 기억하는 초기 증상은 이랬다. 시각 촉각 청각 등이 평소와 달리 수십 배 이상 예민해진단다. 일시적으로 피로가 회복되고, 투약 전에 일상화됐던 나태함이나 암담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의욕이 충만해진다. 이씨는 “오감 능력이 발달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엔 투약을 하고 클럽을 가거나 음악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투약 이후 증상은 흔히 각성ㆍ환각ㆍ이완 증세로 나뉘는데 전체 마약범죄 중 80%를 차지하는 필로폰의 경우 정부는 각성증세(흥분현상)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감각이 예민해지고 흥분되는 특징이 있다 보니 중독자들은 성관계를 위해 투약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약 경험이 서너 번 있다는 프리랜서 방송제작자(41)는 “의도했건 우연이건 성관계를 한번 경험하면 더 필로폰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며 “과장일 수도 있지만 평소 쾌락의 50배 강도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모르핀이나 헤로인처럼 육체적 고통을 상쇄해주며 나른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드는 게 이완증세, 대마처럼 꿈을 꾸는 듯한 느낌 혹은 과대망상이 수반되는 게, 일반적으로 위험하다고 알려진 환각증세다.

필로폰 투약자들이 “성적만족, 자아도취 등 개인적인 만족을 위할 뿐,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필로폰 투약 후 현실을 분간하지 못해(환각)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주변 사람들은 환각 증세를 쉽게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20대 자식이 필로폰 중독으로 치료 중이라고 소개한 중년 여성은 “가끔은 환청과 환시가 있는지, 누군가 자길 얕봤다며 혼자 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4년 6월에는 필로폰으로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격분해 내연녀의 두피를 벗겨내 살해하려 한 30대 남성이 살인 미수로 검거되기도 했다. 마약에 중독된 딸을 뒀다는 한 남성은 “누군가 친구를 죽게 했다며 화를 내며 소리를 치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며 “가만히 두면 어딘가 해코지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마약류 특성을 중추신경 반응신호가 빠르냐 느리냐에 따라 각성ㆍ이완증세를 구분할 뿐, 환각증세는 어느 마약에서든 유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각성제로 알려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인이나 군수공장 노동자의 피로회복, 전투의욕ㆍ작업능력 향상 수단으로 쓰인 필로폰이 마약류로 분류된 이유도 현실감각을 떨어트리는 환각증세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필로폰을 포함한 마약류의 경우 투약자가 몸과 마음이 병들어 피폐해질 때까지 스스로 중독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다 보니 본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병들게 된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여행과 대화, 산책 등 일상에서 유포리아(행복한 감정)를 느끼는 반면 각성효과가 강한 필로폰 투약자들은 약물 회귀 욕구가 다른 즐거움을 압도한다”고 밝혔다. 투약이 반복될수록 점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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