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배철현의 정적(靜寂)] 침묵(沈默)

입력
2018.01.15 14:48
29면
0 0

오늘 새벽, 나는 어제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복기(復棋)해 본다. 그것들은 대개 예상치 못하게 처한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뱉는 수준의 말들이었다. 아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상대방의 얼굴이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심리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상상하여, 적합한 말을 건네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만나서는 그 만남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지 못한다. 나는 아는 사람과 대화에서도, 그 대화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해 경청(傾聽)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과의 말에서 내 생각과 다른 점을 포착하여 반박하였다. 내가 한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도 건질 말이 없었다.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하는 그것’이다. 나는 사람의 말을 준비하는 모습과 말하는 태도를 통해, 상대방을 평가한다. 우리의 말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생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과 말은 그 사람의 행동으로 자연히 표출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은 사람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말을 통해 표출한 행동이 반복되어 굳어진 것을 습관(習慣)이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최고의 덕을 그리스어로 ‘아레테’ 즉 ‘탁월함’라고 불렀다. 그는 탁월함을 ‘훈련과 습관을 통해 성취한 최선’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그 사람이 자주하는 그것이다. 내가 자주 읽은 책은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그가 처한 환경은 그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살펴 매일 매일 개선하는 훈련생이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IT세계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자기혁신의 기반을 ‘공간(空間)’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했다. 그는 다양한 글자체들을 공부하며, 글자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을 역설적으로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일본 선불교 신자다운 발상이다. 내가 글을 쓰는데, 만일 글자 사이 공간이 없거나 글자가 겹쳐진다면,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낙서로 전락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 글자체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저를 매료시킨 것은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미묘하여, 과학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습니다. 이 공간은 나를 미치게 합니다.” ‘공간’이라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여 태양(日ㆍ일)이 두 문(門) 사에서 떠오르는 이른 아침, 자신의 마음속 깊은 구멍(穴ㆍ혈)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이기심과 자화자찬이라는 적폐(積弊)를 발견하고 그것을 끄집어 밖으로 내는 기술(工ㆍ공)이다. 잡스는 매일 아침 자신이 마련한 침묵의 공간에서 명상을 수련하였다.

침묵은 위대한 시작을 위한 공간이다. 기원후 120년경 기록된 예수의 행적에 관한 복음서 ‘요한복음’이 있다. 그 전에 기록된 세 권의 복음서와는 그 세계관이 전혀 다른 책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에 말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 ‘말’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로고스(logos)’다. 여기서 ‘로고스’는 ‘말’이나 ‘이성’뿐만 아니라 ‘행위’와 ‘역사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우주와 삶의 원칙과 같은 것이다. 위 문장에서 ‘말’이전에 전치사구 ‘처음에’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문장을 ‘처음이란 것을 통해, 말이 생겼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처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르키’archi다. ‘아르키’는 건축을 의미하는 단어 ‘아키텍춰(architecture)’의 첫 부분인데, 그 의미는 ‘우주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엄숙한 침묵과 침묵이 깨지는 순간인 시작(始作)’이란 의미다. ‘처음’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반드시 있어야 할 공간인 어머님의 자궁이다. 어머님의 자궁은 온통 침묵이다.

산과 바다는 언제나 나에게 감동을 준다. 침묵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연주가는 나를 감동시킨다. 그(녀)의 침묵의 훈련시간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상가는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분명하게 제시해준다. 그(녀)는 자신만의 침묵의 동굴에서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삶의 원칙을 깨닫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위대한 리더는 믿을 만하다.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상상하여 남몰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침묵(沈默)은 자기훈련이자 자기절제다. 자기광고에 안달한 사회에서 스스로 물(水) 아래로 깊이 침잠(沈潛)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성스럽게 담아 압도적면서도 감동적으로 말하기 위해 입을 다문다. 그것은 마치 진돗개(犬ㆍ견)가 낯선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무는 것과 같다. 나는 오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