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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원숭이 덫에 걸린 정부

입력
2018.01.12 16: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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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은 결과 초래하는 ‘코브라 효과’

이념ㆍ의욕 과잉인데 실천력 빈곤에 허덕여

바람ㆍ물결 따라 방향 바꾸는 용기 아쉬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유난히 정책의 역설이 많다. 이념과 의욕은 과잉인데 실천력 빈곤에 허덕이는 탓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신기루를 꿈꾸며 박차를 가하는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니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설 말이다. 이미 문제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남의 다리만 긁는다.

음식점ㆍ편의점 종업원, 아파트 경비원 등이 줄줄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일부 편의점주들은 수입이 줄어 폐업을 해야 할 지경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올려 주니 자신의 수입이 최저임금이 되지 않는다. ‘없는 자’들 끼리 나누라는 셈이다. 종업원을 줄이는 시스템 도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3,900원짜리 쌀국수를 파는 체인점의 인기가 높다. 이 체인점에는 서빙 인력이 전혀 없다. 입구에서 무인주문 기계에 돈이나 카드를 넣고 음식을 선택하면 자동 결제가 되고 대기 번호가 발급된다. 주방 게시판에 번호가 뜨면 음식을 받아오고 단무지 등을 스스로 가져다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식기를 퇴식구에 넣으면 된다. 인건비가 줄어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도 분위기 파악은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문 정부의 지지기반인 사회적 약자들을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어려움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정책이 조기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장 피해가 커지고 있는데 참고 견디라는 얘기는 화만 북돋운다. 더 황당한 것은 허망한 대책이다. 건물주를 상대로 상가 임대료 부담을 낮추겠다고 한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에 소상공인 납품 단가 인상을, 금융위원회는 카드사에 카드 수수료 인하를,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준수 여부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이겠다고 엄포다.

건물주와 대기업 등에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인데, 시장개입을 과다하게 했던 군부 통치 시절의 행태와 진배없다. 진단이 틀리니 처방이 점점 꼬여 간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보니 정책을 수정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후 폭풍이 더 클 수 있다.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는 게 있다.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했을 때 맹독성 코브라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보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인도인들이 코브라를 많이 잡아 들여 놀라운 효과를 봤다. 하지만 나중에는 아예 코브라 농장을 지어 코브라를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코브라 숫자는 더 늘어났다. 최저임금 인상처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정책을 빗댄 용어다.

이상적 명분과 이념, 인기영합에 집착하면 민생이 위태로워진다. 최저임금의 화끈한 인상 발표는 서민의 속을 시원하게 했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그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으로 나왔다. 정책을 내질러 놓고는 오불관언인 것도 문제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투입과 산출, 피드백의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게 기본이다. 국민이 불편하면 부작용을 해소할 실질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역적 차이를 두거나 외국인에 대한 예외조항, 시행시기 조절 등의 정교한 대안 말이다. 거대 담론과 당위에만 집착하니 디테일이 없다.

‘원숭이 덫’이 있다. 손을 간신히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항아리에 구멍을 내고 안에는 맛있는 것을 넣어 둔다. 그러면 원숭이가 손을 넣어 먹이를 움켜쥐는데, 주먹을 쥔 상태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미련한 원숭이는 절대 주먹을 펴지 않고 버둥거리다 붙잡힌다. 최저임금 인상의 덫에서 손을 빼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과 판박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는 권력이라는 악마의 수단으로 천사의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단과 목적의 극단적 괴리로, 천사의 대의가 실현되지 못하면 악마의 수단만 남는다. 이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한 지도자가 된다. 마키아벨리는 “진정한 지도자는 운명의 바람과 물결의 전환에 따라 방향을 변경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그의 충고가 적절해 보인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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