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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익명에 숨어 마녀사냥... 거짓 밝혀지면 '아님 말고'

입력
2018.01.12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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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벌칙' 같이

피해자가 누가 때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서 당해

애꿎은 희생자만 계속 발생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는 서해순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는 서해순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없다’ ‘일만 잔뜩 시키고 추가근무 수당도 주지 않는다’ ‘휴가를 제때 못 쓰는 건 물론이고 점심시간도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전국 직장인 710명을 조사했더니 4명 중 3명(75.8%)이 ‘직장 갑(甲)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 받는 건 취업준비생이나 학생도 마찬가지. 지난해 취업준비생 1,228명 대상 조사(잡코리아)에선 절반 이상(52.3%)이 압박감, 우울감, 사기저하에 시달리고 있었고, 교복업체인 스마트학생복이 초중고교 학생 8,748명을 조사한 결과 67.0%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을 일 투성인데 해소 방법이 마땅치 않을 때, 인터넷 공간은 분노 표출에 좋은 창구가 되곤 한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뱉은 말에 대한 책임에서도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피해자가 작정하고 소송 등에 나서지 않는 한 비용을 지불할 일은 거의 없다.

최근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인터넷 마녀사냥도 사실 분노 대상을 잘못 찾은, 일종의 그릇된 분노 표출인 경우가 많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권력 관계를 거스르는 분노가 허용되지 않고, ‘분노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분노 해소 창구를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이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단 얘기다.

피해자는 분명한 데 반해, 가해자는 익명의 군중이라는 점 역시 마녀사냥을 심화한다. 김 교수는 ‘인디언밥 벌칙’(게임에서 진 사람이 엎드려 있을 때 여러 명이 등을 때리는 벌칙)을 예로 들어, “엎드린 사람(피해자)이 누가, 어떤 강도로 자신을 때리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러 등을 세게 두드리는 장난을 치거나, 세게 때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부연했다.

성동규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논문(2012)에서 한 마녀사냥 피해자는 “상황이 오해거나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특정인에게 무분별하게 손가락질을 했던 사람들은 ‘아 그래? 아님 말고’라는 말만 남긴 채 사과 한마디, 정정의 글 한마디조차 올리지 않고 다시 일상 속으로 유유히 되돌아간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애꿎은 희생자는 계속 발생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딸이 홀로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발견한 엄마가 울부짖으며 내려달라 하는데도 버스 기사가 이를 무시하고 운행했다’는 글 하나에서 시작된 ‘240번 버스기사 사건’(9월)이 있었고,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고(故) 김광석씨 부인 서해순씨를 상대로 ‘남편과 딸(서연 양) 죽음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8월)하며 사건 본질과 무관한 신상 털기와 각종 비방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종업원이 발로 임신한 배를 걷어찼고 사장은 방관했다’는 거짓 글로 해당 지점이 문을 닫아야 했던 ‘채선당 사건’(2012)도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피해자가 발생할 때마다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자’거나 ‘지나친 비난과 모욕은 삼가자’는 자성론이 고개를 들긴 하지만 그때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과 달리, 그게 걸맞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은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본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 파급력이 한 개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할 정도로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당국 시민단체 등이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릇된 의협심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다. “정의를 사수한다는 명목 하에 사실 확인 없이 특정 개인에 대한 신상 정보나 비방글을 무분별하게 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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