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최소비용 들여 지어
소방차 진입 막은 불법주차도 일상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아

제천 시가지를 서쪽으로 살짝 벗어난 하소동은 2000년대 초까지도 몇 개 아파트 단지 주변에 논밭이 있는 한갓진 곳이었다. 그런데 듬성듬성 자리 잡은 농지에 아파트 단지들이 더 들어서고 상가가 늘면서 어느덧 동네가 신시가지 모양새를 갖췄다. 얼마 뒤 인근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고 대형마트 입점 계획도 발표되었다. 이 동네에 9층 높이의 스포츠센터 건축 계획이 섰던 것도 이때쯤이다.

아파트 단지들을 끼고 있어 사우나와 헬스장을 갖춘 스포츠센터가 들어서기 적당한 자리였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건축주는 농협에서 큰 돈을 빌려 건물을 올릴 형편이었으니 가능하다면 시공비를 아껴야 했다. 외단열은 드라이비트 공법이 손쉬웠고 재료는 다른 단열재의 절반 가격인 발포폴리스티렌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기배선실은 만에 하나 화재가 나면 연통 역할을 해 건물을 훌러덩 태워 버릴 시설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까지 법대로 내화 설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드디어 스포츠센터가 문을 열었다.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사우나와 헬스장 유치는 문제 없었지만 그러고도 남는 공간의 임대가 순탄하지 않았던 스포츠센터는 결국 5년 만에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일대에서 눈에 띄는 건물이었음에도 과거 임대가 여의치 않았던 탓에 낙찰도 쉽지 않았다. 일곱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절반에 새 주인을 맞았지만 주인 역시 낙찰가의 90% 이상을 은행 대출로 감당해야 할 형편이었다.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살필 여유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사실 주변 상가에서 그런 데 신경 쓰는 사람을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인구 13만의 방재를 책임지는 제천소방서 현장 인력은 93명이다. 소방기본법에 따른 최소 기준인 19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구조대의 하루 출동 인력도 법정 기준 29명에서 15명이 모자랐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서울이나 광역시처럼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이만큼 심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40% 가까이 소방 인력이 부족하다. 새 정부가 해마다 3,500명 이상을 충원해 임기 내 부족 인력을 해소하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공무원 증원은 지난해 7월 추경 심사 때도, 연말 예산안 통과 때도 아예 항목 자체가 없었다. “공무원 증원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안기는 몹시 나쁜 정책”이라고 야당은 결사반대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보며 많은 사람이 답답했던 것 중 하나가 소방차 진입을 가로 막는 불법주차였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제천이 유별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불법주차 공화국이다. 대도시의 경우 주차할 공간이 자동차 증가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지 오래다. 규정대로 주차 공간을 마련하려면 당연히 그 만큼 기회비용이 든다. 돈을 아껴야 한다. 소방도로건 어디건 집 밖에 대충 주차 해도 단속이 엄하지 않으니 불안할 이유도 없다. 대형마트의 널찍한 무료주차장이 있는데도 도로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 둔 제천도, 해맞이 관광객들이 몰고 온 자동차로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경포119 안전센터 모습도 새삼스럽지 않다. 차고가 있는 고급주택가마저 길거리 주차가 즐비하다. 불법주차는 이 나라의 엄연한 자동차 문화다.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나는 아버지, 아홉 시 학교 가는 여동생, 다리가 퉁퉁 부어오른 어머니의 일상을 묘사하며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로 시작하는 이성복의 시가 있다. 도대체 세상이 무결할 까닭이 있겠는가. 시인은 이내 퇴근길에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면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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