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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적폐와 대결하는 과정의 삼중고(三重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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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적폐와 대결하는 과정의 삼중고(三重苦)

입력
2018.01.09 15: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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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책의 호기 훅 지나가 버릴 수도

과거의 문제도 현재ㆍ미래에 걸쳐있어

서로 충돌하는 트라일레마 풀기 쉽잖아

이상하게도 개혁입법 가운데 이제까지 제대로 통과된 게 아무것도 없다. 개헌 투표가 6월 지방선거에서 같이 치러질지도 회의적이다. 더욱이 지방선거까지는 정치적 대결 때문에 개혁입법이 처리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가 준비기간 없이 출범했다지만, 자칫하면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가장 좋은 때가 훅 지나갈 듯하다. 왜 이럴까?

흔히 말하듯이 ‘주적’ 같은 것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아서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촛불 집회의 힘이 이재용을 감옥에 보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사람 모양의 표적은 제법 잘 보인다. 다만 사람 표적을 겨눈다고 해서 적폐가 명확하게 포착되지는 않는 듯하다. 실제로는 적폐의 숫자도 많은 데다 서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 가운데 4대 그룹 정도만 잘 나가는 반면에 10대 아래 그룹들은 겨우 버티고 있어서, 재벌도 양극화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정책을 일반적으로 쓰기도 어렵다. 또 4대 재벌은 사람들의 삶을 인질로 삼고 있어서, 실제로 표적이 명확하지도 않다. 또 검찰을 개혁하려고 하면서, 적폐청산 과정에서 과도하게 검찰의 힘에 기대야 하는 역설도 있다. 말하자면, 적폐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문제이지만 그저 단순히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보자. 경제개혁연대는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의 이행률을 평가했는데, 첫해의 재벌개혁 평가에서 0점이 나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며 작년 말까지 대기업들에 유예 기간을 준 것도 실적이 부진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현 상황에서 개혁이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정당들의 의석 분포 때문에 입법이 쉽지 않아서일까? 그런 점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흔히 말하는 경제민주화라는 관점, 곧 재벌의 힘을 약화시켜서 그 과실이 아래로 흐르게 한다는 관점이 현재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김상조 위원장의 말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은 성장 자체가 느려졌다. 3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소액주주 운동, 외국인 주주, 국민연금이 등장했다. 대통령이 법으로 규제하는 것으로만 재벌개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시장의 힘을 존중해야 한다. 억지로 규제법을 만들어도 기준이 어중간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힘을 존중하며 대기업을 개혁하기? 이런! ‘재벌 저격수’란 말은 잊어버리자.

둘째 문제는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실제 삶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개혁의 효과는 제한될 것이다. 일자리부족과 교육 그리고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통령의 ‘착한’ 정치는 벽에 부딪칠 것이다. 따라서 적폐를 청산한다며 부패한 보수와 싸우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문제는 과거의 적폐를 개혁하는 일과 맞물려있기도 하지만, 그것과 다를 뿐 아니라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 사이의 괴리가 핵심인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셋째 문제가 있는데, 미래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현재적 삶의 질과 연결되면서도, 그것과 또 다르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군대든 개인이든 나름대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의 문제도 해결하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들은 얄궂게도 서로 충돌하곤 한다. 안보도 과거·현재·미래의 상이한 차원에 걸쳐있다. 조금 단순하게 말하자면, 일본이 과거의 문제라면 현재와 미래의 그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라진다. 그런데 사람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유발하는 위험을 인지하는 방식이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르다. 중국에 다시 끌려 다닐 미래가 끔찍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두 문제 사이의 딜레마(dilemma)는 비교적 익숙하다. 그러나 적폐와 싸우는 일은 과거ㆍ현재ㆍ미래 사이의 트라일레마(trilemma)를 상대하는 일이어서 더 어렵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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