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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앤다더니… 엄마는 여전히 아이 방학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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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앤다더니… 엄마는 여전히 아이 방학 숙제

입력
2018.01.08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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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흙 눈사람 만들기 꼬박 5시간”

일기ㆍ독후감에 요리ㆍ여행까지

초등ㆍ유치원 학부모 고난의 방학

일선 교육청 자제 권고 안 먹혀

독후감 1편 2만원, 1대 1 맞춤

숙제 대행업체만 때 만난 듯 특수

경기 한 초등학교 4학년생 학부모이자 직장맘인 윤모(38)씨는 최근 딸의 겨울방학 숙제 목록을 받아 들고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일기 일주일 3편 이상 쓰기, 독후감 10편 쓰기, EBS 교육방송 시청ㆍ기록하기 같은 공통숙제는 물론 선택과제(2개 이상 수행)로 요리하고 일지 쓰기, 가족 여행 후 소감문 쓰기 등 어려운 과제가 줄줄이 나열돼 있었다. 윤씨는 “아이가 되레 ‘선생님이 전화해서 숙제를 얼마나 끝냈는지 확인한다고 했다’며 함께 숙제를 하자고 매일 압박을 주고 있다”며 “요리나 여행 등은 부모 시간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 맞벌이 부부인 데다 2학년인 둘째, 7살 난 셋째도 챙겨야 해 난감하다”라고 털어놨다.

엄마나 아빠가 대신해줘야 할 정도로 버거운 숙제라는 뜻의 ‘엄마 숙제’. 7일 교육계에 따르면 겨울 방학을 맞아 과중한 ‘엄마 숙제’ 때문에 방학숙제 대행업체까지 성행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초등 1ㆍ2학년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이나 부모 도움이 필수인 숙제를 없애도록 일선에 권고하면서 다른 교육청들도 비슷한 정책을 따르고 있지만, 방학숙제는 이러한 추세를 비껴나고 있다.

초등학교는 지난달 말부터 34일 가량, 유치원ㆍ어린이집은 지난달 중순부터 2, 3주 가량 겨울방학에 들어가면서, 많은 부모들은 일찍이 ‘만능 엄마’ ‘만능 아빠’ 모드에 돌입했다. 서울의 한 유치원생 학부모 김모(36)씨도 주말마다 딸 아이의 방학 숙제를 해주는 데 최소 5시간을 쓰고 있다. 2주 전 주말엔 폼클레이와 찰흙, 버리는 양말 천을 꿰매 눈사람을 만드는 데 5시간이 걸렸고, 지난 주엔 호떡을 만드는 동시에 딸 아이가 직접 요리에 참여한 모습을 사진기로 찍고 인화하느라 거의 이틀을 할애했다. 김씨는 “방학이 3주 밖에 안 돼 첫 주부터 내 숙제 하듯 매달리고 있다”며 “이번 주엔 공대 출신 남편이 바통을 이어받아 드라이아이스를 활용한 과학실험 숙제를 맡아주기로 했다”며 씁쓸해했다.

특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학원에 보내는 맞벌이 부모들의 경우엔 학원 숙제도 챙겨야 해 ‘산 넘어 산’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학부모 김모(45)씨는 “주변 전업주부 엄마들은 거의 매일 일기쓰기, 책 읽기 등을 점검한다는데, 맞벌이인 우리는 방학 동안 시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아이들을 맡겨놓은 처지라 이것저것 부탁하기 힘들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영어교육전문기업 윤선생이 2016년 8월 초등학생 학부모 5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녀 방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 직장맘은 79.5%로 전업맘(71.4%)보다 8.1%포인트 높았다.

속 앓는 부모들의 사정을 꿰뚫어 ‘방학숙제 대행’ 업체들도 성행이다. 한 온라인 대행업체는 독후감 1편당 5,000원~2만원을 받고 있고, 개인 대행 블로그에선 “방학 숙제 중 수채화 그리기, 포스터 그리기 등의 대행이 필요하면, 표절 의심을 받지 않도록 1대 1로 작업하고 견적을 내주겠다”고 설득하고 있다. 대형 교육업체마저도 온라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방학 숙제 모범사례와 유형별 작성법을 무료로 제공하는 상황. 2011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숙제 대행을 해주고 있다는 A(46)씨는 “매년 여름, 겨울방학마다 20건 이상의 전화ㆍ메일 문의가 들어온다”며 “전국적으로 학교들이 숙제를 줄이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맞벌이 부모와 아이 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이들의 수요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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