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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공존의 원리: 사랑과 정의

입력
2018.01.07 14:4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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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립하기 어려운 사랑과 정의가

서로의 한계와 결함 보완해 주듯

연대와 권리 조화 이루는 사회 돼야

사랑과 정의, 이 두 가지는 모든 고등 종교의 공통된 원리이자 모든 위대한 철학과 문학의 보편적인 주제이다.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의 경전들은 모두 사랑(자비, 仁) 혹은 정의에 관하여 설파하고 있으며, ‘향연’과 ‘국가’를 비롯한 플라톤의 주요 대화록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은 물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같은 친숙한 소설들도 사랑 아니면 정의 혹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공동체나 인간관계에는 그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극단에는 완전한 사랑으로 결합한 이상적인 공동체가 있다. 여기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관심과 헌신 그리고 희생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통한다. 사랑으로 결합된 운명공동체에서는 나의 몫과 너의 몫을 정확하게 나누기를 요구하는 정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오히려 정의를 따지는 행위는 사랑의 관계를 냉각시키고 완벽한 공동체를 타락시키는 악덕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다른 극단에는 순수한 정의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협력의 혜택과 부담을 공정하게 할당하는 정의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할 때 성립한다. 보통 개인이 누려야 할 정당한 몫은 권리로, 개인이 부담해야 할 정당한 몫은 의무로 규정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과 그것을 집행하는 중립적인 기구가 필수적이다. 정의 원칙의 해석과 집행은 공정성 원칙에 따라야 하는바, 그 집행자가 개인적인 사랑이나 은의의 감정 때문에 정의 원칙을 불공정하게 집행하면 위기가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사랑과 정의는 서로 양립하기 어렵다. 사랑은 정의를 초월하거나 경시하고, 정의는 사랑을 금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모순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구제적인 덕목(redemptive virtue)이라 불렀다. 정의가 사회의 으뜸가는 덕목이 되는 경우는 사랑으로 맺어진 완벽한 공동체가 정의를 따져야 할 정도로 균열되었거나 타락했을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들 각자의 몫과 소유를 정확하게 따지는 정의가 원활히 작동해야만 그나마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 이처럼 정의는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열과 갈등을 완화시켜주는 구제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 사이에는 상보적인 측면이 더 많다. 연애결혼을 한 부부처럼 사랑으로 맺어진 운명공동체도 그 구성원들 사이에 최소한의 정의가 담보되지 않으면 희생과 헌신이 한 쪽에 편중됨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정의롭기만 할 뿐 사랑이 결핍된 공동체에서는 특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 어렵다. 다른 사람과 특별한 애정관계나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에 대해 비정한 상인들처럼 행동할 뿐이다. 가족과 우정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들은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 그리고 삶의 의미를 주는 특별한 관계들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특별한 애착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는 순수한 정의공동체는 결함이 큰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사랑과 정의는 서로 각자의 한계와 결함을 보완해준다. 최소한의 정의와 공정성은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 관계를 더욱 단단히 결속시켜주고, 사랑은 정의의 냉정함을 완화시켜 삶에 온기와 기쁨 그리고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정의롭지만 사랑이 없는 관계는 메마르고 공허할 뿐이며, 사랑이 넘치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담보하지 못하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원망과 증오를 낳을 수 있다. 사회 전체의 공존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리와 자유 의식만 팽배할 뿐 연대감이 없는 사회는 차갑고 고독하며, 연대의식은 강하지만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일 개연성이 크다. 요컨대, 사랑(연대)과 정의(권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는 좋은 삶과 좋은 사회의 근본 조건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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