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보강, 제작비 추가 없이는 제작 환경 개선 없어

지난달 15일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제작발표회에 박홍균(왼쪽부터) PD와 차승원, 이승기, 오연서, 성지루가 참석했다. CJ E&M 제공

“고용노동부가 왔다 가면 뭘 합니까? 그들이 지적한 안전 보강작업을 한다고 미술팀원들이 천장합판 땜질하느라 거의 밤샘 작업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추락사고를 목격해 정신적으로 안정이 안 된 사람도 있어요. 게다가 추락사고 당한 스태프 A씨 가족이 고소한 미술감독이 보강작업을 총괄했고요.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방송 지연과 중단도 모자라 촬영 현장 스태프의 추락사고까지 발생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가 방송을 재개한다고 합니다. 6일 밤 9시 방송을 강행한답니다. 방송을 재개한다는데 문제가 된 촬영 현장 여건은 개선됐을까요?

지난달 26일 한국일보는 ‘화유기’의 소도구팀 현장 스태프 A씨가 3m 높이의 천장합판 위에 올라가 조명(샹들리에) 고정 작업을 하다 추락사고를 당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지난 23일 새벽 추락사고가 나고도 tvN을 운영하는 CJ E&M은 이날 첫 방송을 버젓이 내보냈다는 겁니다. 꽁꽁 숨기면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고용노동부가 현장 감식 하면 뭘 하나

‘화유기’는 지난 24일 2회 방송에서 방송 지연과 중단이라는 최악의 방송 사고를 냈고, 현장 스태프의 추락사고 사실까지 알려졌습니다. A씨의 가족과 A씨가 소속된 회사 MBC아트는 방송사인 CJ E&M과 제작사 JS픽쳐스(CJ E&M 계열사), 사고 당일 A씨에게 샹들리에를 설치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은 미술감독 B씨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8일 문제의 ‘화유기’ 세트장을 찾아 현장 감식 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세트 천장위로 올라가야 하는 모든 작업을 중지하라고 명령했고, 목재 사다리의 안정성도 확신할 수 없다며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또한 작업장 안전 확보를 위한 개선 노력 및 용역계약서 상 업무의 범위와 책임 등을 명확히 할 것도 주문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다녀간 뒤에는 좀 나아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는 겁니다. 추락사고를 목격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놓인 미술팀 스태프들이 천장을 땜질하는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그것도 거의 밤샘 작업을 통해 이뤄졌다고 합니다. 더 황당한 건 미술감독 B씨가 이 보수작업도 진두지휘하며 그대로 현장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인이야 어찌됐던 사고 당일 현장을 관리 감독하던 B씨에게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을 지키며 논란을 키운 것입니다. 반성과 책임 없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 보강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을 했어야 했습니다. 현장 감식만 할 것이 아니라 안전 요원(안전관리업체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강작업이 이루어지는지, 방송사와 제작사가 어떻게 현장을 개선하고 있는지 등을 더 점검했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달랑 현장만 찾았을 뿐 사후 관리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밤새 보강작업을 하다 또 다시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현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안전에 유의하라는 진단만 내린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은 안전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화유기’ 현장 스태프들은 경기 안성의 세트장이 창고형이라 “무척 어둡다”고 말합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넘어지기 일쑤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전선줄에 발이 걸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애초에 A팀과 B팀으로 이뤄진 촬영 일정에 맞추느라 스태프들은 하루에 17시간 일했다(본보 12월 28일자 보도)고 합니다. 추락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A팀은 박홍균 PD가, B팀은 김슬아 PD가 맡아 촬영을 릴레이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즉 A팀 촬영이 끝나면 B팀 촬영이 바로 이어진 겁니다. 현장 스태프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A팀에서 일을 하고, 오후 5시부터 새벽 2~3시까지는 B팀에서 연이어 일했다는 겁니다. 현장 스태프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A팀과 B팀이 동시에 촬영을 하면 인력을 분산시킬 수 있고, 촬영이 끝나면 귀가시간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작사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추가 인력에 대한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적정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가 경기 안성의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의 세트장을 방문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제공
인력 보강 및 제작비 추가 없이 휴식시간?

CJ E&M은 지난 5일 ‘화유기’의 방송을 재개하겠다며,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하백의 신부 2017’ 등을 연출한 김병수 PD를 투입시키고, 컴퓨터그래픽(CG)업체를 늘려 최소 2개 이상 업체를 동원한다고 발표했죠. 또한 스태프의 최소 주 1일 이상 휴식을 보장하겠다고 합니다. 스태프의 업무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말이지요.

과연 그런지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방송가에서 박홍균 PD는 꼼꼼하게 촬영하는 연출자로 유명합니다. 자연스럽게 ‘생방송 촬영’으로 촬영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지난 9월 촬영 스태프 명단을 보면, 촬영팀 조명팀 오디오팀 미술팀 등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박 PD는 지난 2006년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출연배우들이 중상을 입고 방송이 중단된 MBC ‘늑대’의 연출자였습니다. 이때도 ‘생방송 촬영’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고된 촬영 일정 때문인지 ‘화유기’ 초반 스태프 구성이 미흡했던 듯합니다. ‘화유기’는 12월까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세 차례나 주요 팀들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더딘 촬영 때문에 지난달 28일 B팀은 MBC ‘구가의 서’를 연출한 바 있는 김정현 PD가 투입됐었습니다. CJ E&M에 따르면 A팀에 박 PD와 김병수 PD가, B팀은 김정현 PD가 촬영을 맡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즉 박 PD의 더딘 촬영 속도를 김병수 PD로 보완하겠다는 뜻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뒤로한 채 ‘화유기’를 방영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현장 스태프들은 “결국 촬영팀이 3개로 늘어난 것”으로 봅니다. A팀과 B팀이 릴레이식으로 촬영을 이어갔는데, A팀에 김병수PD가 투입돼 일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화유기’ 스태프들은 한국일보에 보통 드라마 촬영은 하루에 10~15 장면을 찍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박 PD가 워낙 완벽하게 촬영하려다 보니 하루에 5 장면 이상을 찍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촬영은 늦어지고,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김병수 PD가 투입된다고 상황이 달라질까요? PD만 추가되고 다른 인력은 보강이 안 됐으니 “오히려 더 열악해질 수도 있다”는 게 스태프들의 전언입니다.

6일 ‘화유기’ 관계자들에 따르면, ‘화유기’는 3회와 4회의 촬영 및 편집까지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5회 마무리 촬영이 한창이라는군요. 종합해보면 이번 주 방송 분량만 간신히 마친 상태입니다. 다음주 5회와 6회 촬영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김병수 PD가 투입되면 박 PD가 못 찍은 분량을 맞추느라 밤샘 촬영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게 스태프들의 걱정입니다. 그나마 김정현 PD와 김병수 PD가 촬영을 빨리 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위로라면 위로라는군요.

CJ E&M은 “하루 이상 휴식시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 실제로 하루를 쉬더라도 촬영 준비를 하느라 놀 수도 없다는 겁니다. 정말 CJ E&M의 말처럼 하루 이상 쉬는 구조를 만들려면 “인력 보강”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CJ E&M이 발표한 글에는 (스태프)인력 추가 등에 관한 현실적인 개선 방안은 없습니다. 제작비를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력 추가 없는 촬영 이행과 휴식시간 보장은 ‘공염불’에 불과해 보입니다.

6일 방송을 재개하는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의 주인공 이승기. CJ E&M 제공
‘화유기’ 방영 보류 되어야

‘화유기’ 방영을 미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CJ E&M의 현실적인 개선 방안이 없는 한 ‘화유기’ 촬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존 촬영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화유기’ 방영은 보류해야 합니다. 제작 환경을 개선한 이후에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밤샘 촬영 등 무리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도록 인력 보강에도 힘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당장 ‘화유기’ 방영보다는 제작 환경 개선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제작을 중단하라는 게 아닙니다. 사전 제작을 통해 유연한 편성 일정을 확보해서 스태프들의 안전과 노동시간을 보장하라는 겁니다. 그래야만 시청자들도 안심하고 ‘화유기’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방영보다 사람이 더 소중한 방송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난달 19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5개 부처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방송사가 제작시간 계획표나 제작비 산정 및 지급방식, 저작권 귀속 등을 공개하고 규약을 작성하도록 했고, 외주제작사를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해 최저임금ㆍ장시간근로 등을 집중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방송사 재허가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화유기’의 현장 개선을 발판 삼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하도급업체 간의 갑을병정 관계의 관행도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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