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금과 땅, 뛰쳐나간 예언자

BC 10세기 이스라엘 왕국 세운 후
율법 어기고 땅 매매… 빈부차 심화
50년마다 땅 원주인에 돌려주는 ‘희년’ 제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명심해야
19세기 구스타브 도레의 작품 '예언자 아모스'. 기원전 8세기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내려다보며 수심에 잠겼다.

늘 기도만 하시던 목사님들이 왜 갑자기 거리로 뛰쳐나와 욕을 퍼붓기 시작했을까?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아모스 7:17) 참, 그때 목사님들이 계셨던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예언자들이었다.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던 매개자들이었기에 지금의 목사님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성직자들이신데 말이 참 험하다.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원래 일상에서 접하던 예언자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거문고를 뜯고 소구를 치고 피리를 불고 수금을 뜯으면서 예배 처소에서 내려오는 예언자의 무리를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사무엘상 10:5) 지금의 기도원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집회를 인도하시는 부흥강사님들을 상상하시면 된다. 이러던 목사님들에게 전에 없던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사회 운동가가 되어 불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입에서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은 잘 살았다

기원전 8세기는 이스라엘이 전례 없이 경제적 부흥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부자만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도리어 더 궁핍해졌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경이나 목축을 하며 자기의 직접적인 노동의 결실을 먹고 살았다. 그러다 기원전 10세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왕국을 세웠다. 하나님이 염려하신 대로 왕궁 관료들의 횡포가 시작되었다.(신명기 17:14-20) 이들은 자기의 직접적 노동의 대가가 아닌, 타인의 노동의 대가를 ‘신분’이라는 명분으로 혹은 관료적 직임의 대가로 취하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조직적으로 세금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는 그때부터 건강을 잃기 시작했다. 갖은 비리와 불의로 어그러지기 시작했으며, 참다못해 아모스 목사님은 이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아모스 5.11)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에 비추어 보자면, 세금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 부동산, 즉 토지 문제였다. 고대 중동에서 땅 임대는 매우 흔한 관행이었고 함무라비 법전도 이에 대한 법령을 두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법은 땅의 임대나 매매를 금했다. 토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위기 25:23)

엘리야의 예언처럼 죽어서 개에게 뜯어 먹힌 아합왕의 아내 이사벨. 남의 땅을 탐낸 탐욕이 처참한 결과를 불러왔다. 19세기 그림으로 읽는 성경책에 실린 장면.
나봇의 땅을 탐낸 아합왕

그러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땅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성경의 한 일화를 보자. 나봇이라는 사람에게 좋은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왕이 그 땅을 자기에게 넘기라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나봇은 땅 거래는 하나님이 금지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왕궁은 권력을 사용해 거짓 증거를 만들고 지방 법원을 압박하여 나봇을 사형시키고 만다. 하나님의 염려 그대로였다. 왕궁의 권력은 폐수를 흘려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하나님은 엘리야 목사를 시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열왕기상 21:24) 이 정도면 아모스와 ‘욕 배틀’을 해도 될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 땅은, 애초에 각 집안에 공정히 분배되었고 매매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태어나면 자기 땅이 있는 것이다. 땅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정신의 구현이었다. 어느 사람, 어느 집안,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상관없이, 똑 같이 발가벗고 태어난 우리는 누구든지 공평하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껏 자꾸만 남의 땅에 욕심을 내었다. 땅뿐만이 아니라 하늘도 영역이 있단다. 심지어 달에도 먼저 깃발 꽂기 경쟁 중이라고 한다. 이러다가 공기도 자유롭게 못 마시는 날이 올까 겁난다. 공기 좋은 대전에 내려오려면 서울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닌지.

50년마다 사면되는 희년제도

성경에는 ‘희년(禧年)’ 제도가 있다. 토지를 멋대로 사고팔고 했을 것이며, 가난하여 어쩔 수 없이 처분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50년을 맞이하는 해마다 땅을 본래 공평하게 할당되었던 원주인에게로 되돌려주라고 명령하였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레위기 25:10) 땅뿐만이 아니라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이들도 사면되는 전체적인 해방의 법이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천박해지는 것을 막고 노동자 계급이 고착되는 것을 억제하는 사회적 기제요 신앙이었다. 50년마다 오는 것이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평생에 한번쯤은 넉넉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일생에 한번쯤은 배경과 상관없이, 모두다 똑같은 선에서 인생을 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땅에 대한 이들의 신앙은 특수한 추수법도 만들어 내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기 19:9-10) 땅은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공평하게 주셨기 때문에, 땅의 소산 또한 모든 사람이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땅을 경작한지 7년째에는 휴경을 하여 가난한 사람들 심지어 들짐승도 와서 자유롭게 그 땅을 즐기게 하였다.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거기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출애굽기 23:10-11)

영국 화가 헨리 레조이네의 작품 '희년(The Year of Jubilee)'.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는 순간이다.
예언서는 빈자들을 위해 기록됐다

그래서 기원전 8세기 목사님들은 도저히 기도원에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부여한 대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힘 있는 자들이 대규모로 토지를 사유했으며,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빈곤층이 양산된 것이다. 박해도 받았지만 목숨을 걸고 그들은 외쳤다. “불행하여라, 빈 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해 가고 밭에 밭을 늘려 가는 자들! 너희만 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하는구나.”(이사야 5:8; 가톨릭 성경)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미가 2:1-2)

땅의 희년과 휴경 제도에 비쳐지는 사회 윤리는 참 아름답다. 땅이 누군가의 소유와 자본으로 여겨지는 것을 성서는 부정한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이들만이 그 소산을 통해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되며, 모든 인간에게 두루 그 혜택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본주의 사회가 눈여겨보아야 할 가르침이다.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 속에 뒤쳐져 버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지원이 아니라 해방이 필요하다.

외치던 것으로는 성이 안차셨는지 예언자들은 꼼꼼히 이를 잘 적어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러 예언서들이 남겨지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적혀진 예언서는 아예 없다. 사회적 불의가 성직자의 소명을 그렇게나 바꾸어 놓은 것이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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