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 2년차에 아내와 상의했다. 결론은 둘이서 사랑하며 아이 없이 늙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관수술을 받았다. 아직까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친구들은 학부모가 됐다. 어떤 녀석들은 내게 이렇게 놀린다. “우리 애가 커서 너희 국민연금 대줄 거다, 감사히 받아라.”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가 지금 걔 교육비 내고 있는데, 세금으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선택에 대해 우리 부부는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다.

이런 개인사정 때문에 문제를 억지로 밝게 보는 걸까? 지난해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가 사상 처음 4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며칠 전 보도를 접하고도 솔직히 우려스럽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2750년에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호들갑에는 코웃음이 난다. 신라 사람이 조선왕조 걱정하는 격 아닌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렸다고 하는 위기, 그리고 ‘출산 장려’라는 대책의 논리가 나는 썩 이해가 안 간다. 수명이 길어져 부양 받아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부양할 사람을 그에 맞춰 늘려야 한단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려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질 테니 이 논리에 따르면 인구가 계속 증가해야 한다. 참고로 한국은 도시국가와 작은 섬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다.

게다가 지금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는 건 25년쯤 뒤일 텐데, 요즘 시대에 25년이라는 시간은 변화무쌍하기로는 신라시대의 250년과 맞먹는다. 25년이 지나 2043년이면, 로봇이 웬만한 일을 전부 맡아하는 거 아닐까? 역(逆)노화 기술이 발전해 80대 노인이 40대처럼 팔팔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모자란 건 일할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다. 그 적은 일자리마저 심지어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생산가능인구’를 늘려야 한다니? 그 인구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기에? 이런 마당에 출산 장려, 출산 독려는 누굴 부양하기는커녕, 자기 밥벌이도 해결 못해 눈물 흘리는 젊은이만 늘리는 일 아닐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후손들의 일손을 왜 우리가 염려해주나. 그들에게는 우리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을 텐데. 우리는 미래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 부족을 고민해야 한다. 노인이 많아지는 현상을 보고 경제력이니 생산성이니 하는 차가운 관념을 떠올리기보다, 그 많은 노인들의 표정을 살폈으면 좋겠다.

한국은 가난한 노인과 자살하는 노인이 엄청 많은 나라다. 흔히 청년 자살이 많아서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15~29세 청년들은 10만 명당 18.2명이, 70세 이상은 10만 명 중 116.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2014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서). 65세 이상에서 빈곤층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아이가 적다는 게 아니라 불행한 노인이 많다는 게 우리의 진짜 문제다. ‘그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려면 젊은이가 많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출산을 늘려야 한다’는 도돌이표 같은 주장에 반대한다. 기업에서 개인까지, 고소득자에서 저소득층까지, 전반적으로 부담의 수준을 높이고 혜택도 많이 받는 사회가 되는 게 답이다. 출산이 사회적 책임인 양 몰아가지 말자. 출산이 아니라 세금이 책임이다.

세금 낼 사람이, 일할 사람이 부족한가. 한국은 비경제활동인구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나라다. 전업주부, 고시생, 취업 포기자들이 일을 찾게 만들면 된다. 결국엔 좋은 일자리를 얼마나 만드느냐 하는 문제다. 노인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피부양자가 한 사람 주는 동시에 부양자가 한 사람 늘어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잘 알고 사회적 일자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성과는 아직 흡족하지 않다.

이렇게 보면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요, 출산도 대책이 아닌 셈이다. ‘아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라거나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같은 구호를 보면 불쾌하다. ‘인구는 국력’이라는 인식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우리도, 또 우리의 아이들도 다른 무언가의 수단이 아니다. 우리를 목적으로 대접하는 사회는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부모가 될지 말지는 그에 따라 선택할 일’이라고 할 것이다. 휴가와 정시퇴근 역시 그 자체로 당연한 권리니 거기에 ‘엄마가 행복해져야’ 어쩌고 하는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 없다.

다가오는 ‘노인 중심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기 좋은 고령사회를 만드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 운운하는 소리가 아니다. 노인임이 부끄럽지 않고, 늙어감이 두렵지 않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년층 스스로도 바꿔야 할 의식이 많다고 생각한다.

고령사회가 꼭 활력이 부족할 거라고 예단하진 말자. 북한산에 가보면 젊은이는 눈에 별로 안 띄는데 등산로에 생기가 넘치고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그 기운을 평지로 끌어올 묘수 없을까. 좀 점잖게.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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