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 추락 사고 관계자
여전히 현장 작업 총괄 중
노동부 현장 점검 당일에도
스태프 다리 부상 또 발생
단체 대화방서 “SNS 자제” 단속
질 낮은 자재로 공사해도
해고 우려에 항의도 못해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경기 안성의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일명 ‘비밀의 방’)을 찾아 현장 감식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지난달 23일 새벽 경기 안성시의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에서 천장합판에 올라가 조명(샹들리에)을 달던 스태프 A씨가 3m 높이에서 추락사고(본지 12월 27일자 단독보도)를 당할 때 현장을 관리감독하던 미술감독 B씨가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화유기' 관계자들에 따르면 B씨는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현장을 찾아 지시했던 세트장 안전 보강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방송 지연과 중단, 촬영 현장 스태프 추락사고 등 제작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CJ E&M 계열사 사이인 방송사 tvN과 제작사 JS픽쳐스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계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스태프 경시 풍조를 보여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 키우고 책임은 나 몰라라

A씨의 가족과 A씨가 소속된 MBC아트는 사고 당시 A씨에게 샹들리에를 설치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B씨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현장 스태프는 B씨가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MBC아트는 추락 사고 이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충격이 커 (JS픽쳐스 직원인) B씨를 현장에서 배제해달라"고 JS픽쳐스에 요청했고, JS픽쳐스도 긍정 검토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는 고용노동부가 추락사고 현장을 점검한 뒤 지적한 세트장의 안전 보강작업을 총괄하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추락사고 원인 제공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을 사람이 사고 수습을 총괄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사의 안일한 대응은 고용노동부가 현장 감식을 나온 당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현장 점검이 끝난 뒤 오디오팀의 한 스태프가 세트장 계단을 내려오다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스태프는 반깁스를 한 채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추락 사고가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스태프의 부상을 숨기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사의 고위관계자는 현장 스태프들과의 모바일 단체 대화방에 "언론에 오디오팀원의 부상이 알려졌으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유기'에 대한 글을 올리지 말아달라"고 단속했다. 추락 사고가 밖으로 알려질까 쉬쉬하며 사고 당일 '화유기' 첫 방송을 강행했던 제작사의 부적절한 행태가 또 다시 반복된 셈이다.

김경남 대중문화평론가는 “문제의 본질과 사고의 심각성을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행태가 한심할 따름”이라며 “외주제작사의 하도급 문제까지 조명돼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승원(맨 오른쪽부터) 이승기 오연서 등 배우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를 촬영하고 있지만, 제작 일선에선 현장 스태프가 추락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을’보다 못한 ‘정’들의 현실 반영

'화유기' 현장 스태프들은 A씨 추락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설계가 변경된 세트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A씨가 샹들리에를 달기 위해 올라간 세트는 아직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은, 드라마 속 우마왕(차승원)이 사용할 '비밀의 방'이다. 많은 액자가 벽에 걸려 있어 신비한 느낌을 주는 장소로 원래는 천장(지붕)없이 뻥 뚫려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갑자기 축소돼 높이 3m 부위에 천장합판이 덧대어졌고, 샹들리에를 급하게 설치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장에 샹들리에를 다는 과정에서 “설계도면이 없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드라마 미술감독은 “세트팀이 아니라 소도구팀인 A씨가 조명 설치 및 전선 작업을 했다는 점부터 설계도면이 없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설계도면이 있었다면 전체 세트 작업을 담당하는 세트팀에서 관할했을 거란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드라마 세트장은 설계도면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기 일쑤다. 한 장면이 끝나면 다른 장면을 위해 세트를 뜯어 고치는 식이라 설계도면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또한 설계도면이 있으면 “견적이 나오기” 때문에 일회성이거나 단시간에 설치 가능한 세트는 아예 만들지 않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세트업체는 값싸고 질 낮은 자재로 부실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할 현장 스태프는 거의 없다. 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영세업체 소속 직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일거리뿐만 아니라 업계에 소문이 퍼져 향후 일자리도 잃을 수 있다. ‘화유기’ 미술팀의 경우 세트, 소도구, 의상, 분장 4개 분야로 쪼개서 계약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서 언제든 스태프를 교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오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A씨가 입원한 경기 한 대학병원을 방문해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방송가에 만연해 외주제작사 내에서도 갑을 관계가 나뉘다 보니 안전관리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있는 실정”이라며 외주제작사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는 ‘화유기’ 사고 현장 세트장의 작업을 전면 중지해 이번 기회에 드라마 제작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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