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영화감독 이랑은 2016년 앨범 ‘신의 놀이’를 책으로 냈다. 곡을 쓴 배경을 수필로 엮은 ‘신의 놀이’엔 정작 CD가 없다.

음악은 어디에 담겨 있을까. 이랑은 책에 CD 대신 엽서 하나를 꽂아 음악의 길로 인도한다. 그의 얼굴 사진이 담긴 엽서 뒷면의 하단엔 음원을 내려 받을 수 있는 다운로드 링크 주소가 적혀 있다.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가족을 찾아서’ 등 10곡의 음원을 직접 다운로드해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관문을 통과할 비밀번호 역시 엽서에 적혀 있다. 영어와 숫자를 조합해 만든 7자리 일련 번호였다.

‘신의 놀이’로 지난해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은 이랑은 당시 이 창작물을 앨범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 공인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음콘협)는 ‘신의 놀이’를 앨범 판매 집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LP나 CD 등 유형물에 음이 고정돼 담겨 있지 않아 앨범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랑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치는 깜짝 퍼포먼스를 해 화제를 모았으나 정작 수상 근거인 앨범은 공식적으로는 앨범이 아니었던 셈이다.

매체 형태 상관 없어… 1일부터 ‘앨범’ 개념 달라져

이제 ‘신의 놀이’처럼 음원 다운로드 일련번호만 제공한 창작물도 앨범으로 인정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앨범인 LP와 카세트테이프, CD에 이어 새로운 형태의 앨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음콘협은 지난 1일부터 앨범 집계 대상을 기존 ‘오프라인에 발매된 음반’에서 ‘묶음 단위로 판매되는 상품’으로 변경했다. LP나 CD 같은 음악 재생 매체에 음원이 담겨 있지 않은 음악 창작물도 앨범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음콘협은 지난해 6월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인 지드래곤이 USB로만 낸 솔로 앨범 ‘권지용’을 앨범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야기했다. ‘권지용’ USB 앨범에는 노래 파일이 담겨 있지 않고, 노래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음콘협은 6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급변하는 음악 매체 환경 변화에 부합하기 위해” 앨범의 정의를 변경하기로 했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앨범의 형태는 꾸준히 변해왔다. 1948년 첫 선을 보인 LP(Long-Playing)는 앨범 시대를 열었다. 기존 레코드판의 한 면이 5분 가량 밖에 재생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LP는 20분 분량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다. 한 면에 여러 곡을 녹음할 수 있게 되면서 음반 생산과 소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고, 앨범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생겼다. 1960년대 휴대가 편리한 카세트테이프를 거쳐 1980년대 등장한 고음질의 CD가 앨범의 대중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디지털 혁명을 거치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마이클잭슨(1958~2009)을 비롯해 밥 딜런 등 해외 유명 가수와 김장훈, 싸이 등 국내 가수들이 컴퓨터 파일 저장 장치로 쓰였던 USB에 음악을 담아내면서 앨범 개념은 크게 흔들렸다. USB에 이어 다운로드 일련번호가 있는 창작물도 앨범으로 분류되면서 음악 시장은 다섯 번째 ‘앨범 혁명’을 눈앞에 두게 됐다.

티셔츠에 음원 담은 앨범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뀌면서 앨범의 외형적 실험은 파격을 거듭했다. 인디 밴드 소리박물관은 2015년 포스터에 음원 다운로드 일련번호를 적어 앨범으로 발매했고, 엑소와 여자친구 등 요즘 아이돌그룹은 휴대폰이나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 카드 형태로 앨범(키노 앨범)을 내놓기도 한다.

음악을 담는 그릇 즉 형태로 구분 짓던 앨범의 정의가 허물어지면서 음악 시장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형 가요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티셔츠 등 옷에 앨범 단위로 음악을 넣어 파는 시도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공지능(AI) 스피커 등장도 앨범의 기상천외한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음악 소비자들이 기술의 진화로 음악을 어렵게 찾아 듣는 데서 오는 재미를 잃어 이젠 특이한 앨범 외형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며 “이에 맞춰 음악 제작자들도 분주하게 다양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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