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여 교훈으로 삼는 데는 그것과 관련된 장소에 박물관이나 기념물을 설치해 방문자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 꾸미는 게 좋다. 현장에서 우러난 감동은 울림이 크고 오래 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할 때 진정성(진실성)과 완전성(신뢰성)을 중시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작년 가을 독일과 일본의 박물관과 기념물을 몇 군데 둘러보고, 두 나라가 아주 다르게 ‘장소와 기억’의 상승효과를 기대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나치만행’과 관련된 장소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설을 잇달아 설치했다. 일본은 강제노동과 관련된 장소를 ‘근대산업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재작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했다.

먼저 베를린 일대에 조성한 박물관과 기념물 몇 가지를 소개한다. 독일연방의회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개선문 바로 옆에 ‘학살당한 유럽유대인 기념비’가 있다. 축구장 3배나 되는 넓은 면적에 석관을 연상시키는 2,711기의 서로 다른 콘크리트비를 빽빽이 세우고, 그 지하에 희생자와 그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는 정보관을 만들었다. 그 옆 숲에는 ‘나치에 학살당한 신티·로마 기념비’가 서있는데, 물을 잔잔하게 담은 직경 10미터 가량의 원반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열등 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50여만 ‘집시’(독일에서는 차별 용어로 분류되어 신티ㆍ로마로 표기한다)를 추모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옆에는 ‘나치의 안락사살해자 추도ㆍ정보장소’가 있다. 푸른 유리벽과 설명판대를 세워 나치가 학살한 30여 만 명을 기린다.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은 야외 장벽과 실내 공간에 나치와 전쟁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그 부속시설인 ‘나치 강제노동기록센터’는 노동자수용소로 썼던 바라크를 전시관과 연구실로 꾸몄다. 베를린에 있던 3,000여 개 강제노동수용소는 유럽에서 끌려온 40여 만 노동자를 혹사했다.

독일은 권력이 밀집한 금싸라기 핵심지역, 곧 나치시대의 국회의사당, 수상관저, 총통지하실, 비밀국가경찰, 친위대본부 근처에 위와 같은 박물관과 기념물은 건립했다. 다른 곳에도 그런 시설은 무수히 많다. 베를린 교외 아름다운 반제호반에 있는 ‘반제회의기념관’은 나치고관들이 모여 유대인의 ‘최종해결’(수용소이송, 강제노동, 학살)을 모의한 친위대별장이었다. 지금은 관련 문서와 사진 등을 소장ㆍ전시하며 교육시설로 활용한다. 베를린에서 열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는 1936-45년에 살해당한 10만여 유대인노동자의 기념관이 들어섰다. 근처 ‘라벤스브뤼크 여성전용수용소’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강제노동, 학살, ‘위안부’ 동원의 실상을 전시한다. 독일은 이처럼 나치만행을 기억하고 경계하기 위해 현장에 박물관과 기념물을 설치하고 자료공개와 연구교육 등을 꾸준히 실행한다.

일본정부는 작년 12월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근대산업시설’과 관련된 후속조치이행보고서를 발표했다. 2015년 7월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의 전제조건으로서, ‘각 시설(23개)의 전체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전략’을 준비하라고 일본에 권고했다. 그때 일본대표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게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일본정부는 일본대표의 발언이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각 시설의 통일된 안내판에 강제동원이나 피해자에 관해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 시설이 ‘일본 중공업(제철, 제강, 조선, 석탄산업)의 커다란 변화, 국가의 질을 변화시킨 산업화를 증언하고 있다’는 식으로 미화했다. 그 중 최소 6개 시설에서는 3만여 한국인과 중국인ㆍ연합군포로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는데도 말이다. 2019년에 개관할 ‘산업유산정보센터’조차 현장에서 1,000여㎞나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겠단다.

독일과 일본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나라의 품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가해의 장소를 기억하고 추념하는 방식과 지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명백하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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