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열린 첫 주 이 칼럼의 갈무리로 인사를 드린다. 2014년 7월 7일 자 지면에 ‘사색의 향기’라는 제목을 달고 첫 기명칼럼을 시작한 후 2015년 6월 16일 자에 ‘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3년 반 동안 대략 2주에 한번 꼴로 모두 78편의 글을 기고해 왔다. 지난 연말 일부러 짬을 내어 실린 글의 내용 모두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수룩한 생각들로 귀한 신문지면의 일부를 이루어오다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토닥거릴 수 있는 건, 세상의 열기와 관심에서 비켜 선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담으려 했던 기획취지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는 정도랄까. 무엇보다 지면을 허해준 한국일보와 독자들 그리고 글 속 모든 주인공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제 글이 아닌 지난 내 시선의 궤적을 한번쯤 되묻고자 한다. 세월처럼 쌓인 그 시간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전하려 했었나.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의 소소한 삶의 영역 선상에 감히 올라앉아 그들이 지닌 생의 기쁨과 아픔 그리고 생의 의지를 보고 전하는 전달자로서 충실했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이었으니 자부심과 더불어 더 잘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성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앞으로도 지켜나갈 생의 방향이기에 이런 자문은 가슴속에 깊이 묻어둔다. 역할의 명분으로 크게 얻은 것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성찰적 고민을 이전에 비해 훨씬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쳐 종종 헛물을 켜기는 했지만 사람과 삶의 가치를 주거니 받거니 나눌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갈무리 지을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선택했다. 아니 사진이라기보다는 어느 삶이 남긴 고귀한 여운의 흔적이다. 지난 연말 열두 명의 사진가들과 함께 제주 4ㆍ3평화재단이 주관한 ‘4ㆍ3-70주년 사진전: 소리 없는 기억’에 참여했다. 개막 행사 다음날 제주 전역을 돌며 당시의 피해상황이 남은 현장을 둘러보았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과오의 하나인 제주 4ㆍ3사건 당시 주민 300여 명이 집단학살된 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너븐숭이 4ㆍ3기념관 앞에 이르러 기어코 걸음을 멈춰야 했다. 잊힐 수 없는 엄혹한 죽임의 일상이 차가운 바람에 실린 탓만은 아니었다. 기념관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인 애기돌무덤들이 먼저 내 시선을 잡았다. 특히 한 무덤의 봉분 위에 놓여있는 물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오리인형과 아기양말 한쪽, 바람에 날리지 말라며 돌로 덮어 놓은 아기 옷 한 벌. 슬픔이 승화되어 뭉클하게 가슴을 데웠다. 누군지 알 길 없는 추모객이 남겼을 것이라는 기념관 직원의 설명에 감동은 더 커졌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무덤에 누워있는 어린 영혼들을 가만히 위로했다. 이름 없는 추모객의 행위 앞에서는 그의 선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간 일이라 여겨 무력하게 외면하지 않고 위안의 손길을 내어 준 그의 마음이 제주의 시린 바람을 막아주었다.

속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삶이 틈틈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 제주 북촌마을에서의 그날 오후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세상은 참 아름답다.

임종진 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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