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회, 화 좀 내지 맙시다] <2> 배신, 소외감이 부르는 화

집에서도 밖에서도 ‘퇴물 취급’
택시 잡으려 해도 지나가기 일쑤

서울 유명 상가에서 청소를 하는 김모(74)씨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들을 봐도 모른 척한다. 그게 마음 편하다. 쓰레기통을 바로 옆에 두고도 바닥에 버리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했다가 오히려 “늙은 주제에” “나이 먹었으면 다야” 등 온갖 수모를 당한 경험들 탓이다. “젊은 사람들 쳐다보는 눈빛에 무시가 담겨 있어요. 처음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죠.”

아침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14일, 서울 불광동 주민 김채원(70)씨는 일찍 집을 나섰다. 잠실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가야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버스에 지하철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 택시를 타겠다고 마음 먹고 대로변으로 나와 기다렸다.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길 30여분. 그 사이 김씨를 보고도 지나친 ‘빈 차’만 5대였다.

또 빈 택시가 오자 김씨는 차도로 내려가 팔을 휘저으며 “택시”를 연신 불렀다. 그제서야 2차선을 달리던 택시가 다가왔다. 택시에 올라탄 김씨가 “왜 이리 택시가 사람을 안 태우냐”고 푸념하자, 택시 기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할머니라서 그래요”라고 했다. 택시를 잡았다고 안도하던 김씨는 택시 기사의 다음 말에 화가 치밀었다. “어르신들 목적지 설명도 대충하지, 요금 깎으려 하지, 정치 얘기하면서 시비 걸지 그래서 잘 안 태워요.”

서울역에서 노인들이 지하철 1호선 열차에 타고 있다. 고영권기자

노인들은 서럽다. 소외 당하고, 무시 당하고, 퇴물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분노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올해 전체의 14%를 돌파 예정이지만(통계청 조사) 노인 홀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을 끌어 안으려는 노력조차 줄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암울한 지적이다.

노인들은 당장 가정에서 소외된다. 고석민(78)씨는 “집에서 얘기 나누는 사람이 없다. 내가 말해봐야 다 잔소리로 받아들여 쓸데없이 느껴진다”며 “결국 답답하고 화도 나 명절 빼곤 항상 집 밖으로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집 밖이라고 나아지는 건 없다. 오히려 화를 돋울 뿐이다. 김남칠(74)씨는 지난주에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아주 황당한 말을 들었다. 노약자석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세금도 별로 안 내면서 공짜로 탄다”고 구시렁대더라는 것이다. 김씨는 “이제는 경제력 없다고 매몰차게 ‘필요 없는 존재’ 취급 받으니 화가 난다”고 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완전 배제시키려는 분위기엔 여전히 할 말이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남경기(65)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말 잘못한 건 맞지만,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노인들의 투표권을 뺏자는 주장은 지나치다. 어떻게 하면 이해시키고 함께 갈지 고민해야지, 노인은 이제 국민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우선 우리사회가 ‘연령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 안에서 노인이라고 무조건 혐오하는 건 차별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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