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회, 화 좀 내지 맙시다] <2> 배신, 소외감이 부르는 화

#1
강원랜드 입사시험 10차례 낙방
채용 비리 소식에 화 치밀어
#2
대학 등록금 마련 어려운 고학생
알바 하다가 지쳐 자퇴하기도
#3
정규직 전환 믿고 계약직 근무
궂은 일 다해도 재계약 불가
‘노력의 배신’에 체념ㆍ한숨

“제 능력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거라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죽어라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요. 결국 헛수고만 한 거죠, 무려 십수년동안 말입니다.”

강원랜드 입사는 강원 정선군에서 나고 자란 민경복(36)씨 유일한 꿈이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안정과 복지가 보장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전공(관광학)을 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처음 원서를 넣은 건 2003년. 서류는 통과했지만 2단계 직무능력평가서 탈락을 맛봤고, ‘첫 도전에 서류를 통과한 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취업 청탁 봇물 속 10차례 탈락… “나는 들러리 인생”

‘다음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도전을 계속했다. 강원랜드 하청업체에서 전공과 상관 없는 보안 업무를 맡으며 기회를 엿봤고, 소규모 리조트에 취업해 경력을 쌓았다.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중에도 공개채용(공채) 공고가 뜰 때마다 원서를 넣었다. 그러나 2013년까지 탈락만 10차례.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며 꿈도 차츰 희미해지던 지난해 9월, 그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뉴스를 접했다. 머리가 멍했다. “저는 그저 ‘들러리’ 선 셈이죠.” 의지와 능력 부족을 탓하며 자신을 향했던 원망은 사회를 향한 분노로 변했다. 그는 공채 불합격자 21명과 함께 강원랜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동그라미재단과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16~74세 남녀 3,500명 대상 조사에서 5명 중 3명(62.6%)이 ‘우리사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했다. 연령대로 따지면 20대의 비율(69.1%)은 훨씬 높았다. 연구에 참여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인 노력보단 지역, 성별, 경제력 등 생득적 요인에 따라 성취가 결정된다는 인식이 짙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의지나 노력의 힘을 부정한다는 얘기다.

가난한 대학생은 돈만 벌다 저질 일자리로

등록금을 벌고자 일을 시작했지만, 일에 치여 결국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공익근무요원 이종희(26)씨는 “남들은 1, 2차선 도로로 쌩쌩 달리는데, 나는 언제까지 갓길로 걸어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12년 충남 소재 대학교 항공기계학과에 입학했을 때부터 ‘캠퍼스 낭만’은 그에겐 먼 얘기였다. 부모는 학기당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대줄 형편이 안 됐고, 그는 평일 저녁 호프집, 주말 PC방에서 돈을 벌었다. 수업에선 졸기 바빴고 학점은 바닥을 기었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동기 누구보다 전공에 애착이 강했지만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급이 높은 공장에서 방학 내내 일하면, 학기 중엔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겠다 싶었다. 2014년 1월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공장에 들어갔다. “대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왜 일하는 거냐” “술 먹으려고 돈 버는 거냐”는 비아냥도 참았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예 학업을 접기로 했다. 당장 먹고 살기 막막한데, 대학교 졸업장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고졸 학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 한계는 분명했다. “월급이나 진급 속도에서 대졸 직원과의 차이가 상당하더라”는 현실만 체감했다. 그는 유턴을 꿈꾼다. 등록금이 없어 언제 돌아갈진 미지수다. “재입학은 된다는데... 졸업하면 서른을 넘길 텐데… 취직을 할 수는 있을지…” 마침표 없는 말만 이어졌다.

분노한다고 달라질까… 체념 청춘

결혼 육아 등 행복으로 채워야 할 것들이 때론 버겁다. 두 살배기 아빠인 계약직 의료기사 김모(26)씨는 “오늘 잘릴지 내일 잘릴지 모르는, 그야말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에 자식을 키운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200만원을 조금 웃도는 월급이 적다곤 할 수 없지만, 월세(30만원) 학자금대출상환금(17만원) 등 꼭 필요한 지출 뒤에 남는 건 100만원 안팎. 딱 세 식구 먹고 살 수준이다. "아이와 함께 그 흔한 문화센터, 놀이공원조차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한숨 쉬었다.

그는 임상병리학과를 졸업했다. 매년 배출되는 졸업생에 비해 수요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급이 넘치니 그나마 일자리는 육아휴직 대체인력 같은 계약직이었다. “정부나 대학 차원에서 일자리 수급 현황을 분석한 후, 입학 정원을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터뜨려 보지만 공허한 외침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1년 계약직으로 대학병원에 들어갔다. ‘평가가 좋으면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사무실 청소도 도맡았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했다. 그러나 경영난을 이유로 병원은 최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본보와 인터뷰한 청춘들은 “노력의 힘은 믿지 않는다”고 분노를 쏟아내다가 이내 “무의미하게 소리치느니 재빨리 체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서울에서 5㎡짜리 고시원에 사는 휴학생 김모(22)씨는 ‘한국사회에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가’란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임의 룰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종희씨 역시 “이젠 화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죽어라 노력해도 불공평한 사회를 거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포기했더니 분노도 치밀지 않는다”고. 노력의 배신에서 그들은 체념과 포기를 배웠다. 스스로를 더 큰 상처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그 사이 사회에 대한 불신은 짙어지고, 또 다른 분노가 싹트고 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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