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달라” 무시하고 목적지까지
법원 “경로 이탈 없이 안전 운행”
남편과 통화하며 구조요청도 안 해

처음 말한 장소로 가던 중간에 내려 달라고 요구한 승객을 끝까지 차에 태워 원래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택시 기사는 감금죄를 지은 걸까.

지난해 3월 어느 밤 서울 금천구 한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잡은 여성 A(55)씨는 신대방역을 목적지로 불렀다.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택시기사 B(61)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택시 안에서 술 냄새가 난다며 창문을 활짝 연 A씨에게, 겨울기운이 가시지 않은 바람 탓에 추위를 느낀 B씨가 문을 닫으라고 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A씨는 화가 나 내려 달라고 요구하며 “택시요금을 내지 않겠다” “신고하겠다”는 말을 했다. B씨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11분간 약 4.8㎞를 주행, 원래 목적지였던 신대방역에서 A씨를 내려 줬다. 이후 신고로 B씨는 감금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승객의 하차 요구를 무시한 채 차량을 계속 운전해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게 한 행위는 감금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과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감금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18단독 이강호 판사는 “B씨가 감금하려는 고의가 있어 피해자의 신체 자유를 제한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B씨가 진행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택시를 운전해 A씨를 안전하게 하차시켰고, A씨는 택시 안에서 남편과 자유롭게 통화하며 B씨 태도를 비난하는 얘기만 했을 뿐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정황을 무죄의 근거로 봤다.

또 택시가 횡단보도나 교차로 신호를 지키는 등 필요 시 자유롭게 문을 열고 하차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점, 원래 목적지에 다다르자 B씨가 정확한 하차지점을 A씨에게 물었고 A씨도 ‘앞으로 조금만 더 가서 내려달라’는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정확하게 하차한 점도 B씨 무죄 증거로 꼽았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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