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회, 화 좀 내지 맙시다] <1>"못 참아" 작은 일에도 버럭

장애인 결혼 실패담에 “뻔뻔” 공격
군중심리에 기대어 분풀이 삼아
사이버 명예훼손 신고 건수 급증
명예훼손/2017-12-29(한국일보)

“님이 불쌍해 보이지도 않고 뻔뻔해 보여요. 양심도 없지. 현실감각을 기르세요.”(결혼 실패담을 올린 장애 여성에 대한 베스트 댓글)

지난 달 23일 네이트판 ‘결혼ㆍ시집ㆍ친정’ 게시판에는 선천적 구순구개열(입술ㆍ입천장 갈라짐) 장애를 가진 여성의 하소연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에서 만난 동갑 내기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얘기가 오고 갔지만 남자친구 부모와 만난 뒤 무산됐다. 남자친구 어머니가 “유전적으로 손주까지 장애가 우려된다”며 헤어져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후천적으로 팔다리가 없는 장애면 혹시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차라리 다음 생에는 팔다리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 남자친구를 잡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라고 적었다.

그런데 다수의 위로 댓글 속에 3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은 베플(베스트 리플)은 “(팔다리가 없는) 남의 장애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인성이 글렀다. 동정을 받을 여지가 없다”라는 독설이었다. 또 다른 베스트 댓글 역시 “어떤 엄마가 미쳤다고 멀쩡한 자식을 (장애인에게) 장가보내나. 양심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상 현실 속 익명의 분노는 현실보다 훨씬 더 독하다. 현실에서 차마 분출하지 못했던 감정과 언어는 온라인 속 분풀이 대상을 만나면서 날 선 언어로 표현된다. 대개 이들의 분노는 사회 현상이나 이야기 속 핵심 주제와는 무관하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하나의 사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지난 달 15일 다음 미즈넷 직장생활 코너에는 약혼자가 있는 9살 많은 과장이 자신에게 구애하고 있어 불편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연락하고 싶지 않지만 직장 관계상 어떻게 대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이 글의 베스트 댓글 중 하나는 “그런데 왜 반말하나. 싸가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댓글에도 역시 “반말하는 인성을 보니까 껄떡대는 거 아니겠나“라는 비아냥이 잇따랐다. 내용보다는 심기를 거스른 것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이 같은 가상공간 속 분노가 법적 다툼으로 비화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2014년 8,880건이던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죄 신고 건수는 2016년 1만4,908건으로 67.8%나 증가했다. 인신공격이 담긴 악플과 게임 속 언어 폭력이 대다수다. 2017년 역시 11월말 기준 1만2,208건으로 지난해 수준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이 화나 분노를 더 극대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배려가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치이고 상처를 받는 일이 일상에서 벌어지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분노를 표출하기가 어려워 익명의 공간에서 공격성을 극대화해 표출되는 것”이라며 “특히 익명성이 보장될 때는 군중심리에 기대 공격 대상을 다른 이들과 함께 더욱 쏘아붙이는 현상이 강하게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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