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시민들이 강원 강릉 경포대 해변에 설치된 오륜기 조형물 옆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손을 들고 있다. 강릉=김주영기자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통해 소시민으로서의 자괴감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박정희 체제가 어느 정도 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1965년의 작품이다. 소시민의 목소리를 빌면서도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정확히 꿰뚫어 지금까지도 그의 명작 중 하나로 널리 읽히고 있다. 그렇다. 그 시절 국가 권력에는 시인이 얘기한 부조리와 악이 존재했다. 그러니 문제는 독재에 어떻게 맞서는가 하는 결정뿐. 정면돌파하고 투옥되든지, 김수영처럼 한발 비껴 서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든지.

50년이 훌쩍 지나 우리는 누군가 진실을, 절대 선(善)을 쥐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기름덩어리 덜 나오는 갈비 맛집을 검색하며 사는 삶을 우습게 봤다간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금은 왕궁 속에 계략과 음모가 판치는 시대도 아니다. 물론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진영 논리로 나뉜 정치 풍토다. 여권의 극렬 지지층은 상대방을 척결이나 청산의 대상으로 여길 뿐이고, 야권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새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는 데 치중한다. 제1야당이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겠다던 대선 전 약속마저 허물 때는 ‘정치는 양의 얼굴을 한 늑대’라는 격언이 새삼 실감났다. 과연 촛불 이후 한국 사회는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간 것인가.

국회를 출입하던 1년 전 이맘때는 희망이 보였다. 12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충돌 없이 통과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국민의 96%가 등을 돌렸다는 압도적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게 나라냐”는 화두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세대와 계층, 지역의 차이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 날 여의도 야당 대표실을 일일이 돌며 협치를 당부했고, 야당들도 열린 마음으로 화답했다. 2017년은 새 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탈권위와 개혁 드라이브, 그리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다 함께 보냈던 박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들고 있다. 보수 진영은 적폐청산이 박 전 대통령 너머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9년, 더 나아가 보수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며 다시 대여투쟁 모드로 바꾸고 있다. 진보 진영은 수구 세력의 저항, 반혁명 시도가 노골화됐다며 적폐청산을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날을 세운다. 대통령의 모든 행보가 옳고 방중 성과는 한치의 훼손 없이 빛나야 한다는 대의에 갇혀 소위 ‘문빠’ 핵심 인사의 입에서 ‘기자폭행은 정당방위다’는 발언이 나온 걸 보면 앞으로 대립의 골은 더 깊어질 것만 같다.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한쪽 측면만 보고 다른 측면은 애써 외면하는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촛불이 명령한 우리사회의 새로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과격 발언이 나오거나 폭력 조짐이 보이면 평범한 시민이 제지하면서 단 한 건의 유혈 충돌 없이 치러낸 것이 촛불 집회다.

무술년 새해가 밝는다. 안보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고, 미래 먹거리는 더 찾기 힘들 것이라 한다. 공공기관장을 비롯한 각종 자리 나눠주기가 본격화하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미리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영국의 명예혁명보다 더 사전적 의미의 명예혁명을 치른 국민 아니던가. 누구의 생각을 바꿔놓거나 싸워서 꺾어버리는 게 아니라 대화와 설득, 상생의 정신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정치권을 기대한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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