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2월 20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헤르만 괴링의 호사스러운 집에서 비밀 회의가 열렸다. 구스타프 크루프, 프리드리히 플리크, 프리츠 폰 오펠 등 독일 최고의 기업인 20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히틀러의 연설을 들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그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들은 200만 라이히스마르크(1924∼1948년 독일에서 사용하던 통화 단위)를 나치에 지원키로 했는데 이는 다가오는 선거운동에 쓰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이들은 독일 헤렌클럽(신사회)의 멤버였다. 헤렌클럽은 보수적이기는 해도 국가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기심만을 위해 행동한 그들은 결국 히틀러의 조력자가 됐다. 그 결과 그들은 대량학살의 공범자가 됐고 마침내 나라를 파멸로 몰고 갔다. 반면 그들의 기업은 노예 노동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작가 토마스 만은 헤렌클럽을 ‘비참함의 촉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플리크와 다른 사람들이 가벼운 징역형을 선고 받고는 번성한 것을 막지는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치 독재자가 아니다(비록 가까운 조언자 중 일부가 과거 파시즘과 나치즘에 영감을 준 사고를 존중하지만). 그렇지만 그는 지켜야 할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는 언론 자유와 사법 독립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네오나치 등의 폭력을 옹호한다. 영국의 극단주의자가 올린 무슬림 반대 동영상을 리트윗한 것은 가장 최근에 보인 그의 분노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정치인들과, 선거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수십억 자산가들조차도 백악관의, 위험할 정도로 별난 나르시시즘에 대한 개인 차원의 불안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몇몇 예외를 빼고는 정치인들은 그를 계속 지지한다.

조세법이 최근 상원을 통과했다. 하원 법안과의 조정을 거친 다음 트럼프의 서명을 받아 법이 시행되면 대기업과 부자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누릴 것이다. 이는 미국의 재정건전성도 악화시켜 2027년까지 1조2,140억 달러의 적자를 추가 발생시킬 전망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주와 중서부 러스트 벨트 도시의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된다. 주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지원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 바로 이들 지역이다. 매우 부유한 사람들을 더 풍요롭게 하는 대가를 그들 지역 주민이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미국과 1930년대 독일은 많이 다르다. 좌파 사상가들은 종종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은 자유주의 자본주의에 특히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과두정치에만 도움이 되도록 고안된 것은 아니다. 광업과 군비지출로 이익을 본 기업들은 이 두 체제 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박해 받는 소수민족과 반체제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정부 프로그램에서 도움을 받았다.

1933년 히틀러와 괴링 주변에 모인 기업인들은 폭력 체제에 매수됐다. 독일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다. 히틀러는 자본가들을 사악한 목적으로 이용했다.

트럼프의 미국 상황은 약간 다른 듯 보인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에서 포퓰리즘적 언어로 월가 자본가 등 고학력 도시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다. 교육받지 못한 백인 인종주의자와 현대 사회에서 고립된 듯 느끼는 사람들에게 계속 영합하고 자유주의자들과 인기 없는 소수 민족 및 종교적 소수파에 대한 문제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세계에서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세금 감면에 대한 집착과 조직화한 노동 및 연방정부에 대한 혐오감에서 보면 찰스 코흐와 데이비드 코흐 형제 또는 카지노 거물인 셀든 아델슨 등 부자 기부자들이 트럼프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크루프나 오펠만큼이나, 필요한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있는 자본주의의 한 유형을 대표한다. 이것은 트럼프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시작했다. 적어도 로널드 레이건의 공급측면 감세와 규제완화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기적으로 보면 부유층과 기업가가 잘 해낼 것이다. 주식시장은 한동안 활기를 띨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적자가 발생하고 국제무역협정이 파탄나며 중요 기반시설ㆍ교육ㆍ의료에 대한 지출 부족으로 상황이 매우 나빠질 수 있다. 즉각적인 재정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대통령을 격려하는 것은 애국심 부족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일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헨리 포드는 1942년까지 나치와 협력한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는 또한 히틀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우선위원회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주창한 포디즘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차를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조세법은 잠재 소비자 수백만 명의 처지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그것은 사업에도 좋을 리 없다.

이안 부루마 저술가 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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