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곽도원 “영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

알림

곽도원 “영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

입력
2017.12.30 17:51
0 0
곽도원은 “정우성의 눈빛을 보면 저절로 감정에 몰입되더라”며 브로맨스의 비결을 들려줬다. NEW 제공
곽도원은 “정우성의 눈빛을 보면 저절로 감정에 몰입되더라”며 브로맨스의 비결을 들려줬다. NEW 제공

배우 곽도원(44)은 3년 전부터 제주도에 살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에 푹 빠져 서울을 잊고 지내던 평화로운 나날에 균열을 느낀 건 지난해다. 사드 배치 갈등에 중국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제주도가 조용해졌고, 중국 자본의 투자가 끊겨 여기저기서 부도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곽도원은 머나먼 일인 줄만 알았던 국제 정세가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간접 경험했다. 그리고 그 즈음 영화 ‘강철비’ 시나리오를 받았다. 연출자 양우석 감독이 ‘변호인’(2013)에서 함께 작업한 곽도원을 일찌감치 캐스팅 물망에 올려놓고 쓴 시나리오였다.

“주변국들에 치이는 한국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하더라고요. 너무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어요. 한국이 아니면 어디서도 만들 수 없는 영화이기도 했고요.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도원은 ‘강철비’와의 첫 만남을 강렬하게 기억했다.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에 내려오면서 촉발되는 한반도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그린 ‘강철비’는 이번 주말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반도 정세를 꿰뚫는 통찰과 입증된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풀어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곽도원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 열풍이 사회 곳곳으로 번지는 걸 직접 목격하고 체감하면서 영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양 감독이 ‘강철비’에서도 묵직한 한방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죠. 그러니 더더욱 조심스럽고 진지해지더군요.” ‘변호인’에서 곽도원은 고문 경찰인 차동영 경감을 연기했다.

하지만 ‘강철비’에서는 반대 성격 인물이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았다. 북한 권력 1호와 남한에 온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의 정우성이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두 ‘철우’의 우정은 일촉즉발의 긴장에 숨통을 틔운다. 곽도원은 ‘아재 개그’도 담당했다. ‘아수라’(2016)에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두 배우는 평소에도 서로를 ‘꽉꽉이’(곽도원) ‘정사장’(정우성)이라 부르는 절친한 사이다.

곽도원을 비롯해 수많은 관객들이 명장면으로 꼽은 ‘망향국수’ 먹방 장면. NEW 제공
곽도원을 비롯해 수많은 관객들이 명장면으로 꼽은 ‘망향국수’ 먹방 장면. NEW 제공

곽도원은 두 철우가 망향국수를 먹던 장면을 인상적으로 떠올렸다. 각자 한 손에 수갑을 채운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가 곽철우가 엄철우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란히 앉아 국수를 후루룩 들이킨다. 곽도원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이다. “살기 위해 먹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이 장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봐요.”

낯선 남한에 홀로 놓인 엄철우를 절제하면서 표현해 낸 정우성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남한 정권 교체기 한가운데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엄철우와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곽철우를 노련하게 그려낸 곽도원도 탁월하다. 감정이 과하면 신파가 되고 모자라면 무성의해질 수 있는, 표현의 적정 수위를 절묘하게 포착했다. 곽도원은 “곽도원이기 전에 곽병규(곽도원 본명)라는 사람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가 곽철우였다”고 했다. 또 상대역 정우성에게도 공을 돌렸다. “정우성이 빨개진 눈으로 순박하게 저를 쳐다보면 저도 모르게 울컥해지더라고요. 죽을 것처럼 연기한다는 의미를 정우성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남자가 봐도 멋있어서 무척 떨려요. 하하.”

‘강철비’는 시나리오와 감독, 상대역이 아무리 좋아도, 메시지에 공감하지 않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곽도원은 “힘의 균형으로 얻어지는 평화”라는 냉철한 현실 진단에서 출발한 이 영화에서 “지난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 한 편이 배우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느꼈다”고도 했다. 그래서 요즘엔 더더욱 자신을 경계하려고 애쓴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할 때 극단 대표님께서 ‘배우는 무정부주의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세상이 모두 한 가지 색깔을 강요해도 배우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죠. 영화라는 매체로 이야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저 자신이 얼마만큼 용기를 갖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계속 점검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곽도원은 곽철우가 대학에서 특강하는 장면에 한반도 평화 메시지가 담긴 대사를 직접 써갔다. 아쉽게도 영화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그는 “캠핑카를 타고 해남에서 대구와 서울과 평양을 지나서 유라시아 대륙과 동유럽까지 여행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NEW 제공
곽도원은 곽철우가 대학에서 특강하는 장면에 한반도 평화 메시지가 담긴 대사를 직접 써갔다. 아쉽게도 영화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그는 “캠핑카를 타고 해남에서 대구와 서울과 평양을 지나서 유라시아 대륙과 동유럽까지 여행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NEW 제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