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역가 황석희

영어교사 준비 동기들과 달리 춘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일주
전공 학점 부족한데도 음대 수업… 일주일간 전화 끄고 도서관 잠수
그런 와중에 불쑥 '황석희 옮김' 다섯 글자 박힌 책 갖고 싶은 충동
"후회 없이 살아 돌아가고 싶진 않다"
28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만난 영화 번역가 황석희씨. 그는 자신을 키운 8할이 공부 빼고 안 해본 것 없던 충만한 20대 시절이라고 말한다. 서재훈기자

“20대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돌아가겠습니까?”

요즘은 이 질문을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본다. TV에서, 책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젊음의 가치를 말하고자 흔히 던지는 질문이니까. 소위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평가되는 사람이 여러 매체에 출연해 “내가 이룬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에선 듣는 이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나 괴롭고 치열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고 이 역시 공감을 산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정말 좋은 20대를 보냈음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쪽이다. 20대 이야기를 할 때 자주 하는 말이 “범죄의 영역을 제외하면 공부 빼고 안 해 본 게 없다”다. 지금껏 가장 많은 책을 읽고, 가장 많은 글을 쓰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걱정 없는 낮잠을 자고, 가장 많은 여행을 다니고, 가장 많은 노래를 불렀던 시절. 돌아봐도 나름 충만했던 시절이기에 그리 후회가 남지 않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금은 그때만큼 책을 많이 읽지도, 글을 많이 쓰지도, 많은 곳을 여행하지도, 많은 사람을 만나지도, 많은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때만큼 꾸준히 성장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시절에 섭취한 것들을 양분 삼아 간신히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한껏 게으른 어른으로 큰 주제에 그렇게 충만한 20대를 보냈다는 게 과거의 나에게 참 무안스럽다.

충만한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똑똑해서라거나 철두철미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의 20대에 비하면 멍청하고 칠칠하지 못하고 계획 한 줄 없이 즉흥적인 편이었다. 아마 엄했던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지방으로 대학을 가면서 해방감이 폭발한 까닭일 거다.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덤비는 사람이 돼 버렸다. 지도 한 장 준비해 놓지 않고 춘천에서 대관령을 넘어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거나, 전공 학점도 모자라는 주제에 음대 전공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있다거나, 일주일씩 전화 꺼놓고 장서실로 등교해서 종일 좋아하는 책만 본다거나 하는 무(無)대책 인간.

번역을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무 대책과 즉흥성 때문이었다. 사범대생이었기 때문에 과외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고 씀씀이가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버는 돈으로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면서 현실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땐 전문 과외가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도 구체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교생 실습 4주조차 답답해했던 한량 기질 때문인지 직장을 알아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동기들과 다르게 딱히 뚜렷한 계획이 없던 나는 그 와중에 불쑥 “황석희 옮김”이라는 다섯 글자가 박힌 책을 갖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기억에도 없는 것을 보면 딱히 대단한 계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하고 싶었겠지. 그렇게 불쑥 떠오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어찌어찌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니 커다란 소명의식으로 일을 시작한 번역가들 눈엔 어이없는 전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망할 따름이다.

영어교육과는 당연히 영어 교사를 육성하는 곳이란 생각 때문인지 동문 선배 중에 번역가가 된 사람은 없다. 하물며 영화 번역가가 있을 리가. 영어 교사 이외의 진로를 떠올릴 수도 있고 아예 영어와 상관없는 진로를 떠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시절엔 영어 교사 이외의 꿈을 꾸는 동기들을 본 적이 없었다. 우연한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주제에 꺼낼 말은 아니지만 그때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넓은 세상에 노출됐더라면 우리 눈엔 훨씬 다양한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을까.

지금 20대는 전례 없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고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잔인하게 늘어만 간다. 나를 키운 8할은 내 20대에 게걸스럽게, 혹은 대책 없이 흡수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지만 지금 세상에 나와 같은 20대를 보낸다면 낙오자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강연 요청이 오면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할 엄두가 나질 않아 대부분 고사하는 편이다. 다만 그럼에도 이런 기회로나마 이야기를 꺼낼 가치는 있다고 믿는다. 요즘 20대는 20년 전의 나보다 훨씬 야무지고 똑똑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의 접점을 찾아낼 것이고 접점이 없다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부디 충만한 20대를 보내고 훗날 나보다 더, 훨씬 더 잘난 척해 주기를.

황석희 영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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