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미드필더 황지수(36).
그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코뼈 골절’이다. 황지수는 지금까지 경기 중 상대축구화에 채여 세 번이나 코뼈가 내려앉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축구가 몸싸움이 다반사인 종목이지만 이렇게 뼈가 많이 부러지는 건 드문 일이다. 황지수는 29일 본보와 통화에서 “처음 코가 부러졌을 때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이 보이면 또 얼굴을 들이밀게 되더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또 하나는 ‘공익근무’다. 그는 2009년 10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낮에는 경기 동두천시의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배달하고 밤에는 공익근무요원이 출전할 수 있는 K3(4부 리그)의 양주시민축구단에서 공을 찼다. 축구는 단 몇 달만 경기를 못 뛰어도 감각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황지수는 2년 간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 휴가를 거의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 소집해제를 한 달 앞둔 2011년 10월 포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언제 군대를 갔다 왔냐는 듯 또 다시 주전을 꿰차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황지수가 정든 유니폼을 벗는다.
그는 2004년 포항에 입단해 군 복무 기간을 뺀 12년을 포항에 몸담으며 320경기(6골 12도움)를 뛰었다. 30년 넘는 프로축구 역사에서 통산 32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40명이 채 안 된다. 한 팀에서만 뛰고 은퇴한 선수로는 신태용(성남ㆍ401경기), 김현석(울산ㆍ371경기)에 이은 3위의 대기록이다.
황지수는 경기 동두천 사동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경기 평택의 신한중ㆍ고, 호남대를 졸업했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프로 입단 후 매 시즌 30경기 가까이 뛰었다. 단 한 번도 후보로 밀린 적이 없다는 뜻이다. 도드라지는 특색 없었던 그가 만 서른여섯까지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헌신과 희생이다. 황지수는 “나는 기술도 뛰어나지 않고 빠르지도 않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힘은 좋았다”고 미소 지으며 “내가 축구를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뛰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팬들은 그를 ‘황투소(이탈리아의 저돌적인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에 빗댄 별명)’라 불렀다.
황지수는 한 살 연상의 이은원 씨와 2010년 결혼해 딸만 셋을 둔 ‘딸부자’다. 이번에 은퇴 결심을 밝혔더니 아내는 “당신 선택에 따르겠다”며 “이제 코뼈 부러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칠 때마다 한 번도 속상한 내색을 한 적이 없는 아내였는데 은퇴 이야기에 그제야 속마음을 털어놔 마음이 짠했다”고 했다.
황지수는 다음 시즌부터 2군 코치로 일하며 지도자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군말 없이 팀 전력에 힘을 보태는 ‘다른 황지수’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선수와 비교해 스스로가 조금 떨어지고 부족해 보여도 포기하지 마라.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분명 기회는 온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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