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다시 확인시킨 2017년
우리 사회 심각한 문제 쌓여 있어
민주주의 확대로 해결책 모색해야

스물 두 살 청년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은 게 1987년 1월이다. 며칠 전에는 박종철의 삶을 다룬 영화 ‘1987’이 개봉해 30년 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종철의 죽음은 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스러진 비극이지만 한 시대를 바꿨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의 죽음이 6월 항쟁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대통령 선출 권한을 돌려주었으니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의 힘이 이보다 두드러진 사건은 많지 않다. 그리고 2017년.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을 이번에도 국민의 힘으로 갈아치웠다. 국민이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선 역사가 30년 만에 재현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힘은 약 30년을 주기로 폭발한다”고 한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분석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여기에 보태 소설가 현기영은 쇠퇴했던 리얼리즘 문학이 30년 만에 다시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는 글을 얼마 전 녹색평론에 썼다. 그가 말한 리얼리즘 문학의 부활은 6월 항쟁이 촛불 혁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과 함께 한 현상이니 문학의 순환과 역사의 순환이 맞물린 셈이다.

현기영이 말한 대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부모 세대를 계승하는 데는 대강 30년이 걸린다. 그 정도 시간이면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촛불 혁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게 30년 전의 역사가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으니 이제 그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의 역사 또한 오늘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요, 가까운 미래다. 새해에 보다 분명한 좌표를 정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1년 단위로뿐 아니라 한 세대 후의 우리 사회까지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평등, 일자리 부족, 과다 경쟁 교육, 저출산, 지방의 몰락, 북핵 문제 등 숱한 과제가 던져져 있다. 이 중 불평등 문제는,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협박과 북한의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걱정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을 부르고 외세 의존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냉전적 사고를 조장해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터이지만 방법 찾기가 마땅치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결국 우리의 눈길은 민주주의의 강화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까지 민주주의가 지금보다 더욱 신장되면 지혜가 모이고 지성이 커질 것이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그것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배척되지 않는다면 사회의 통찰력이 생기고 분별력 또한 높아질 것이다. 이제껏 진리라 믿었던 법칙들을 회의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나설 수 있는 용기까지 민주주의를 통해 얻을 수 있다면 답이 쉬이 보이지 않는 난제들을 풀 수 있는 과감한 상상력을 품을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숙의 과정을 거쳐 현안을 판단하는 숙의민주주의의 사례를 우리는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재개 여부의 결정 과정에서 최근 목격했다. 김종철 영남대 교수는 “숙의민주주의는 오늘의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도구일지 모른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듯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의사를 더욱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하는 것도 매우 시급하다. 어떤 방식의 민주주의냐를 놓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 또한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과정이다.

우리 역사에서 쉬이 볼 수 없었던 시민 참여와 역동성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높아져 누군가의 생각과 발언이 존중 받는다면 새해 한국 사회는 더욱 성숙해지고 그럴 때 직면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다시 30년이 흐른 뒤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한 해의 끝자락에서 소망한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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