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ㆍ근로시간 등 영향 '발등의 불'
문 정부 '청산 이후 건설 실적' 압박 커져
현실 발 딛고 정책 부작용 유연 대처해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신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야." 강자들의 '갑'질에 맞서는 우리 주변 '을'의 이야기를 그린 jtbc 드라마 '송곳'(2015년)에 나오는 대사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영세기업에 한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 줘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며 "이런 입장을 청와대와 고용노동부 등에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고 문득 떠오른 장면이다. '장관 홍종학'이 정의를 입에 달고 다니던 '의원 홍종학' '교수 홍종학'이었을 때도 이렇게 말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여야는 얼마 전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과 노동계가 휴일ㆍ연장 수당 산정 및 기업규모별 적용 방식에 이의를 제기해 합의가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 30인 이하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한정했다고 해도, 홍 장관이 청와대의 의지와 달리 특별연장근로 8시간 허용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의외다. 나무가 잘 자라야 숲이 건강해진다는 '디테일', 아우성치는 중소기업계의 척박한 환경을 홍 장관이 체감한 까닭일 게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민주당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노동계를 향해 쓴소리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부터 적용되는 역대급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소개하며 "문재인 정부는 '3년 내 최저임금 시급 1만원' 공약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통합을 고려한 최저임금의 과속을 지탱하려면 근로자, 사업자, 소비자, 납세자 등 여러 주체가 공동체 차원의 '견딤과 양보'를 감내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보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얼굴만 붉힐 것 같으니 공약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며, 저소득층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면 파급효과가 크고 무차별적인 최저임금 대신 핀 포인트 정책처방이 낫다고 봤다.

어 위원장도 언급했듯이 최저임금은 정권의 정체성이 반영된 정치 문제다. 또 당사자들이 모두 한계선에 내몰린 집단이라는 점에서 갑과 을의 관계라기보다 을과 을의 긴장이다. 가난한 우산 장수 아들을 도우려는 선의가 나막신 장수 아들을 울린다면 참으로 당혹스런 일이다. 그나마 최저임금은 산입 범위를 조정하기로 했고, 정부도 시행성과를 보고 완급을 조절하자고 했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서 제기되는 노ㆍ노 갈등,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찬ㆍ반 분열,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실효성에 대한 의ㆍ정 대립 등은 모두 정책 설계의 디테일과 관련된 것이다. '사람이 먼저' 등의 선한 의도만으로 정책을 펼 경우 부닥치는 역설을 우린 시장에서 수없이 봐 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숨가쁘게 뿌린 씨앗들은 대부분 집단 간의 이익 재배분과 양보, 견딤과 포용의 거름이 있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1일 '상생ㆍ연대를 실천하는 노사 만남'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 가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노사 양측이 딱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 달라"고 주문한 이유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늦어도 내년 말까지 '청산 이후의 건설 실적'을 보여 줘야 하는 문 대통령의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말로 들린다.

하지만 내년부터 시간은 문 대통령 편이 아니다. 세월과 함께 국정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권력의 자연법칙이다. 정치 지형과 공간도 더욱 적대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지도체제를 재정비한 자유한국당은 물론 새로 탄생할 중도보수 통합신당도 버거운 상대다. 그래서 일자리 정책이든 저출산 대책이든 개혁입법이든 개헌작업이든,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퇴치하고 정책목표에 도달하려면 정교한 로드맵을 짜는 지혜 이상으로 지지층의 절제를 요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인의 현실감각 없이 서생의 문제의식을 실천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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