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웬만해선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에서 익숙한 소재지만 이 시 ‘민들레 피리’는 조금 각별하다. 윤일주 시인(1927-1985)이 친형 윤동주 시인(1917-1945)을 그리며 쓴 시이기 때문이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수감 중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원인 불명으로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을 떠올린다면 “언니도 말없이 갔었지요”라는 한 문장이 과연 얼마만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민들레 피리는 버들피리나 다른 풀피리처럼 소리 나는 피리가 아니다. 입으로 후, 하고 빈 바람을 불면 여린 풀잎이 떨며 소리의 파동을 만들듯 민들레 하얀 꽃씨가 너울거리는 물결로 조용히 춤춘다. 소리 없이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윤동주 시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지막 길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가 남긴 시가 있다. 동생 윤일주 시인과 친구 정병욱 선생이 자필 유작을 모아 펴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로 청년 윤동주는 시인 윤동주로 다시 피었다. “언니여, 그때엔 우리도 만나겠지요”라고 노래하던 윤일주 시인은 지금 다른 나라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있겠지만 이 시집을 만들며 이미 잠시 함께 했을 것이다.

탄생 100주년으로 윤동주를 더욱 기억했던 올해, 두 형제 시인은 동시집 ‘민들레 피리’ 안에서 다시 만났다. 이 시집에는 윤동주의 동시 34편과 윤일주의 동시 31편이 나란히 실려 있다. 평자의 눈으로 볼 때 작품수가 그리 많지 않은 윤동주 동시에서 손꼽을 만한 수작은 단 몇 편이지만 두 사람이 이 시집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기도 한 법이다. 특히 시에서는 보기 힘든 씩씩하고 여유만만한 어린이 윤동주를 그의 동시에서는 마주할 수 있다.

“넣을 것 없어/걱정이던/호주머니는//겨울만 되면/주먹 두 개 갑북갑북.”(‘호주머니’ 전문) 두꺼운 롱패딩을 입어야 겨우 추위에 떨지 않겠건만, 기껏해야 솜저고리가 전부였을 그 때 겨울은 얼마나 추웠을까. 사탕 한 알 품고 다니며 뿌듯하게 만지작거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호주머니이니 겨울이면 오히려 더 얇아져 한기가 들었을 텐데 ‘갑북갑북’ 들어찬 작은 주먹 두 개가 추위를 환히 녹인다.

2017년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의 백 번째 생일이다. 한파가 계속되지만 주먹 두 개 ‘갑북갑북’ 호주머니에 넣고 청운동 골짜기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갑북갑북’만 떠올릴 수 있다면 거칠게 트고 메마른 두 손에도 조금은 온기가 돌겠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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