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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슴으로 쓴 편지] "강릉의 느린 삶, 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해요"

입력
2017.12.28 09:5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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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의 전셋집을 떠나 강릉 경포대 초당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황주성, 김은현씨 부부가 강아지 얼둥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황주성씨 제공
지난해 서울의 전셋집을 떠나 강릉 경포대 초당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황주성, 김은현씨 부부가 강아지 얼둥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황주성씨 제공

벌써 2년 전이네요. 서울의 한 뒷골목 막걸리집에서 형과 마주 앉았던 그때가 아직도 생각나요. 강릉에 내려가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들려드리니 형은 말씀하셨죠. “주성아, 쉽지 않을 거야.” 형의 걱정대로, 저는 이곳에서 잘 벌고 있진 못해요. 하지만 잘 살고 있죠. 제 기준에서는요.

이곳에서의 삶, 물질적 풍족함은 없어요. 자리 잡는 단계라지만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수입은 저희 부부가 함께 벌던 수입의 절반으로 줄었거든요. 게다가 들어가는 건 왜 이리 많은지. 매달 적자가 아닌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 다가올 육아, 노후에 대한 건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요. 당장 걱정해봤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이런 넉넉잖은 살림에도, 이런 살림을 유지하기 위한 고단함에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들게 해요. ‘오길 잘 했다’고요. 아, 저 혼자의 생각 아니냐고요? 처음엔 반대했던 아내도 이젠 동의해요.

낯선 이 지역을 이해하며, 스스로 회사를 꾸려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저는 비로소 제가 무엇에서 행복을 얻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전까지 행복을 소위 절대적인 공식처럼 생각해왔죠. 돈으로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면 얻어지는 것이 행복이라고요. 하지만 이곳에서 제가 느끼게 된 행복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냥, 일상의 감동 같은 거였죠.

길 가다 마주친 동네 형님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즐거워하는 고객을 만나고, 내 계획과 활동에 박수를 보내는 지인들의 반응을 접하고, 키우는 강아지와 동네를 산책하고, 소박한 반찬이지만 아내와 늦지 않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그런 것들. 정말 사소하죠? 서울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고단함에, 때로는 기회가 없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일상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이어지고 모여서 행복하게 하고, 힘든 일을 잊게 하더라고요. 나아가 더 열심히 일할 동기도 만들어주고요. 얼마 전 본 강연 동영상에서 MBC 김민식 PD가 제가 느꼈던 감정을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더라고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저는 그 말에 정말 100% 동감했어요.

결국 제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건, 당장 많은 돈을 벌어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리지 않아도 꾸준히 재미있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바쁘게만 살다, 남과 비교되는 행복에 내 기준을 맞추다 보니 성에 차지 않았던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씩 제 기준을 세워가며 지금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을 꾸준히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뜬구름 같은 행복 이야기만 했네요. 물론 행복하기 위해 돈은 꼭 필요합니다. 좀 더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은 버렸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가오는 새해에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할 생각이에요. 성실한 국민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노후와 육아는 정부가 보장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깐요.

이제 강릉 초당동에는 동해바다만 있는 게 아니라 저도 있습니다. 도심에서의 삶이 빡빡하다 느껴질 때 잠시 숨통 트이러 찾아 주세요. 다시 뵐 날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형! 우리, 행복하자고요.

서울 전세생활을 버리고 강릉에 사는 황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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