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유출 사고 10년...태안반도 끝을 가다

태안 원북면 학암포해변은 한 해를 보내는 해넘이 장소로 손색이 없다. 단단하고 경사가 완만한 해변으로 얇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들며 넋을 빼놓는다. 낮이 길어지는 여름에는 오른편 섬 부근으로 해가 진다. 태안=최흥수기자

그 바다를 살린 건 결국 사람이었다. 기름 범벅을 뒤집어쓴 모래와 바위에 숨구멍을 틔우고, 어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보게 한 건 130만 자원봉사자의 손길이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2번지, 태안반도의 무수한 굴곡 한 끝자락 언덕배기에 군 초소를 개조한 ‘유류피해역사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음의 바다를 되살린 ‘태안의 기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 전시관이다. 새까만 기름을 뒤집어쓰고 눈만 껌벅거리는 이름 모를 바닷새와 초록 점퍼 차림으로 찬바람 속에서 방제작업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을 대비한 사진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허베이스피리트라는 괴물 같은 화물선이 6만드럼이 넘는 시커먼 원유를 쏟아 내며 태안 해안국립공원을 죽음으로 내몬 건 2007년 12월 7일, 꼭 10년 전이었다.

태안을 살린 고난과 희망…태배길을 걷다
태배길 끝자락에 위치한 ‘유류피해역사전시관’

559km, 태안의 길고 긴 해변 중에서도 ‘태배길’을 택한 건 바로 이곳이 태안의 절망과 기적, 그리고 희망을 품은 곳이기 때문이다. 태배길은 소원면 파도리해변에서 원북면 학암포해변까지 이어지는 97km ‘해변길’의 한 구간으로 의항해변을 출발해 ‘유류피해역사전시관’까지, 반도 안의 작은 반도를 한 바퀴 돌아오는 6.4km 길이다. 의항(蟻項)은 개미 목을 뜻하는 한자어, 개미 허리보다 가는 부분이니 이곳 지형의 특징을 콕 집어낸 이름이다. 그러니까 태배길은 개미 머리를 한 바퀴 두르는 셈인데, 그 짧은 구간을 순례길ㆍ고난길ㆍ복구길ㆍ조화길ㆍ상생길ㆍ희망길 등 6개 이름으로 세분해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태안 주민들에게 원유 유출 사고는 그만큼 씻기 힘든 아픔이었고, 큰 사건이었으리라.

태배길에서 보는 갯바위에서는 기름 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름처럼 아담하고 예쁜 구름포해변.
태배길에서 내려다 본 구름포해변.

길은 의항해변에서부터 왼편에 바다를 끼고 솔숲을 들락날락거리며 연결된다. 썰물로 드러난 갯바위에서는 주민들이 굴을 따는 모습도 보인다. 잔잔한 바다에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는 모습처럼 이름도 아름다운 구름포해변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언덕으로 넓은 비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민가가 없는데도 차량 두 대가 너끈히 비켜 갈 만큼 길이 넓다. 10년 전 그때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닦은 길이다. 모래를 헤집고 바위를 긁어 떼어 낸 기름덩이를 양동이와 포대에 담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길이다. 세월이 지나며 자연은 재앙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화답했다. 기름 때가 사라진 바위 언덕은 예의 아름다움을 되찾았고, 바다는 한껏 푸른 빛을 머금었다. 솔 바람과 기암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청량하고, 내딛는 발걸음도 가볍고 푸근하다.

유류피해역사전시관에 걸린 사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시관 옥상은 전망대로 이용된다. 오른쪽 육지 끝자락이 학암포해변.
태안 해변길 이정표

자그마하게 지은 유류피해역사전시관 옥상은 전망대를 겸한다. 상괭이가 노닌다는 푸른 바다로 눈을 돌리면 수평선 끝자락에 7개의 작은 섬들(대뱅이 굴뚝뱅이 거먹뱅이 돌뱅이 수리뱅이 질마뱅이 새뱅이)이 아렴풋하다. 뭉뚱그려 칠뱅이(七防夷) 섬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서해에서 육지에 닿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오랑캐를 방어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관 아래 등대섬으로 내려가는 길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의아하게 생각한 ‘태배길’의 정체가 밝혀진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이곳의 빼어난 경치에 취해 여러 날을 머물다가 해안가 바위에 오언시(五言詩)를 남겨 일대를 ‘태배’라 부르게 됐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실제 해안 큰 바위에 먹으로 글을 쓴 자국이 남아 있지만, 사실 그가 썼다는 명확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과장이 심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법이다. 차라리 뗏목처럼 통나무를 엮어 만든 떼배를 이곳에서는 ‘태배’라 불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그럴싸하다.

전시관 아래 등대바위
굴을 따는 어민들 뒤로 대형 화물선이 지나고 있다.

전시관을 지나 길은 안태배해변과 신너루해변, 의항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 온다. 따라서 자가용 이용자도 의항해변에 차를 대고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시관까지 차로 갈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학암포해변 지나 가다가다 만대까지

의항해변에서 해안도로를 계속 달리면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 신두리 해안사구를 지나고 반도의 또 다른 끝 학암포해변으로 이어진다. 해변의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바위 형상이 마치 학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곳이다.

이곳도 태안의 여느 해변처럼 경사가 거의 없다. 썰물 때면 단단하고 고운 모래 해변이 드넓게 펼쳐지고, 밀물 때면 겹겹이 밀려드는 파도가 얇게 펼쳐진다. 긴 곡선을 그리는 파도가 층층이 밀려들다 정점을 찍고 쓸려 나가는 물살과 부딪히면 드넓은 해변 캔버스에 멋진 추상화가 그려진다. 때로는 보드라운 꽃잎처럼 하늘거리고, 때로는 묽은 반죽처럼 미끄러진다. 다양한 형상으로 꿈틀대는 파도에 넋 놓고 있노라면 행복한 착시현상에 빠진다. 우아한 학의 날갯짓도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해질 무렵에는 바다와 해변에 비치는 노을이 하늘보다 발갛다. 이만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몰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학암포해변의 일몰 풍경.
밀려드는 파도가 빚어내는 풍경이 예술이다.

학암포해변에서 이원방조제를 지나 북측으로 길을 잡으면 드디어 태안반도 끝 만대항으로 이어진다. ‘어서 오십시오~ 가다가다 만데…만대항.’ 어느 식당의 환영 현수막이 만대항이 어떤 곳인지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만데’는 태안 말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 땅끝이라는 뜻이란다. 가로림만의 드넓은 갯벌과 굴 양식장을 사이에 두고 서산 대산읍과 마주보고 있고, 서쪽 바다 너머로는 인천 옹진군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눈에 들어온다. 차를 이용하면 몇 시간을 돌아야 할 거리인데 바닷길은 의외로 가깝다.

만대항에서 꾸지나무해변까지는 태안의 또 다른 해변 걷기길인 ‘솔향기길’ 1코스로 연결된다. 물이 빠졌을 때 삼형제바위까지 약 800m 정도를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태안 바다의 특색을 제대로 살필 수 있다. 넓은 뻘로 변한 항구에서 쉬고 있는 어선을 뒤로 하고, 맞은편 방파제로 내려가면 된다. 두 개의 봉우리만 보이던 삼형제바위는 가까이 가서야 제 모습을 모두 드러낸다. 한 굽이 더 돌면 바닷물을 가둬 물고기를 잡는 독살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관광객을 위해 맨손 물고기잡이 체험을 하는 시설이다.

만대항 인근 갯바위에서 한 주민이 굴을 따고 있다. 바위 자체가 굴 껍질로 이루어진 듯 온통 굴 밭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태안 바닷가 어디서나 싱싱한 굴을 캘 수 있다.
굴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갯바위.
가로림만 굴 양식장 인근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만대항에서 꾸지나무해변으로 이어지는 솔향기길에서 본 가로림만 풍경.
만대항 뒤편 서해 바다로 섬보다 더 큰 화물선들이 지나고 있다.

사실 경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굴 껍질이다. 방파제를 내려서자마자 온통 굴 밭이다. 바위에 빈틈없이 들러붙은 모습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다. 어쩌면 굴이 쌓이고 쌓여 화석이 되고 바위를 형성한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썰물을 틈타 부지런히 굴을 캐는 주민에게 말을 건넸다. “하루에 얼마나 따세요?” “바다가 열어 주는 만큼 하지 뭐.” 우문현답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모두들 와서 기름 걷어내고 해줘서 고맙지요.” 태안군민의 그 마음은 이원방조제 벽화에도 그대로 담겼다. 이름하여 ‘태안 희망벽화’는 130만 자원봉사자의 손도장 7만개로 2.7km 방조제를 장식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태안반도 바깥 바다는 호남과 충청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뱃길이다. 이따금 세곡선이 지나던 그 바다에는 그날도 섬보다 더 큰 화물선들이 인천과 평택항으로 오가고 있었다.

태안=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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