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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코드 7줄로 ‘페이팔’ 위협하는 억만장자 형제

입력
2017.12.23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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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콜리슨(왼쪽)과 존 콜리슨 형제. 출처=스트라이프 홈페이지
패트릭 콜리슨(왼쪽)과 존 콜리슨 형제. 출처=스트라이프 홈페이지

온라인 결제 시장의 최강자 페이팔을 위협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아일랜드 출신 20대 형제가 2010년 창업한 스트라이프(Stripe)가 주인공이다. 미국 비즈니스 조사업체 데이터나이즈에 따르면 12월 기준 스트라이프의 미국 내 점유율은 7.95%로 아직 페이팔(76.65%)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절대강자를 상대로 아직 기업공개(IPO)도 하지 않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낸 결과치곤 무시 못할 수준이다. 현재 페이팔의 경쟁자라고 할 만한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주식시장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라이프의 현재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알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연간 500억달러(54조원)의 결제가 스트라이프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연간 매출이 15억달러(약 1조6,000억원)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2년 5억달러에 불과하던 기업 가치도 지난해 말 1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92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유니콘(10억달러 가치의 스타트업)을 넘어 데카콘(100억달러 가치의 스타트업)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이프는 현재 전 세계 핀테크 분야 비상장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 놀라운 건 창업한 지 7년이 지난 이 기업의 창업자 형제가 아직도 20대라는 점이다. 지난해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가 92억달러로 평가됐을 당시 형제 중 동생인 존 콜리슨의 자산 평가액은 11억달러였다. 스냅챗 공동창업자인 에반 스피겔보다 2개월 어린 나이(26세)에 최연소 억만장자(순자산 10억달러 이상)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존은 스트라이프의 회장으로 판매와 제휴를 맡고 있고, 두 살 위 형 패트릭은 최고경영자(CEO)로 제품 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10대에 백만장자가 된 콜리슨 형제

콜리슨 형제는 아일랜드 중서부의 소도시 리머릭에서 태어나 인구 100여명의 시골 마을 드로미니어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어머니는 미생물학을 공부해 과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등 자영업을 하며 과학과 무관하게 아이들을 키웠다. 그래서 패트릭은 “부모님이 작은 사업을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사업이란 건 아주 일반적인 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삼형제 중 첫째인 패트릭은 어릴 때부터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여덟 살 때부터 리머릭대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았고, 열 살 땐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15세에 아이작 뉴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인공지능(AI) ‘아이작’으로 아일랜드의 학생 과학 경연대회에 참가했고, 이듬해인 2005년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해 1등상을 차지하며 ‘올해의 젊은 과학자’로 선정됐다. 고교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마친 패트릭은 13세에 치른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로 17세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진학했다.

패트릭 만큼 수상 이력이 화려하진 않지만 존도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내며 형과 보조를 맞췄다. 아일랜드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고점을 기록하며 16세에 고교 과정을 마친 뒤 2007년 형과 함께 소프트웨어 회사 ‘슈파’를 설립했다. 형제는 아일랜드에서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아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탈 Y컴비네이터가 형제의 사업에 관심을 보였고, 패트릭은 MIT, 존은 하버드대에 진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굳이 아일랜드에서 투자자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2008년 콜리슨 형제는 실리콘밸리에서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2명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와 아마존의 개인 판매자를 위한 거래 관리 프로그램 ‘옥토매틱(Auctomatic)’을 만들었다. 그리고 500만달러를 받고 캐나다 회사 라이브커런트미디어에 팔았다. 패트릭이 채 스무 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성공이었지만 이들에게 옥토매틱은 작은 출발에 불과했다.

7줄짜리 코드로 온라인 결제 시장을 뒤흔들다

패트릭과 존은 학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온라인 결제 회사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다 보니 페이팔 같은 결제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를 단순화할 방법을 찾다가 직접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페이팔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온라인 결제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시스템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편의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판매자는 자신의 쇼핑몰에 페이팔의 복잡한 시스템을 적용시키느라 많은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며 골머리를 썩어야 했고, 사용자들도 페이팔 계정을 만들어 결제할 때마다 쇼핑몰 사이트와 페이팔 사이트를 오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콜리슨 형제는 “이건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결제하러 은행을 다녀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패트릭과 존은 결제 시스템의 복잡한 구성을 단순화해 단 일곱 줄의 코드만 갖다 붙이면 누구나 쇼핑몰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했다.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 결제 건마다 2.9%와 30센트의 수수료만 내면 되도록 했는데 이는 4~5%에 이르는 카드 수수료보다 저렴하다. 사이트 개발자는 그저 이 코드를 복사해 붙이면 됐다. 구매자도 신용카드 정보만 입력하면 결제 사이트를 들르지 않고 곧바로 결제할 수 있게 됐다. 신용카드 정보가 쇼핑몰 서버에 남지 않고 곧바로 신용카드사의 인증을 받도록 해 보안 문제도 해결했다.

스트라이프에 관심을 보인 것은 흥미롭게도 페이팔 마피아(페이팔 창업에 참여해 큰 돈을 번 뒤 스타트업 투자와 재창업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였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벤처 캐피탈 세콰이어캐피탈 등이 스트라이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투자했다. 두 형제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트라이프는 직원 900여명의 회사로 성장했고, 누적 투자액도 4억4,000만달러에 이른다.

“매년 2배 이상 성장이 목표..기업공개는 천천히”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세계 모바일 결제 시장은 매년 33%씩 성장해 2022년이면 3조3,88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자상거래의 중심이 컴퓨터에서 모바일 기기로 옮겨가면서 스트라이프처럼 모바일에 최적화한 결제 시스템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패트릭 콜리슨은 “지금까지 거둔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정한 목표를 이루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10만개가 넘는 스트라이프의 고객은 주로 중소 규모의 기업이나 소규모 판매업자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 기업용 메시지 서비스 슬랙 등이 대표적이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앱 내부의 결제 시스템으로 스트라이프를 사용하고 있다. 스트라이프는 애플페이의 파트너사로 선정돼 기술을 제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마존도 일부 결제 방식에 스트라이프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급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경쟁 세력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라이벌은 페이팔이 인수한 브레인트리다. 스트라이프처럼 간단한 결제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레인트리는 페이팔의 막강한 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 등을 고객사로 흡수하고 있다.

스트라이프는 페이팔을 추격하는 한편 브레인트리를 따돌리기 위해 온라인 결제와 관련된 각종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례로 ‘레이다’는 머신러닝 방식의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결제 패턴을 파악, 훔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사기 행위를 감지하는 시스템이다. 또 ‘아틀라스’는 500달러만 내면 미국 밖에서도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은행 계좌와 세금 및 법률 문제를 간단하게 처리해주는 것이다. 스트라이프는 매년 2배 이상 성장하겠다는 목표로 스타트업 위주인 고객사의 범위를 더욱 확장해 유수의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콜리슨 형제는 “당분간 기본에 충실할 것”이라며 스트라이프의 IPO 계획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콜리슨 형제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시간이 무한하게 주어진다면 TV도 보면서 여가를 즐기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며 주말에도 개인교사를 고용해 법과 물리학 등을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인 패트릭 콜리슨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이 카운트다운되고 있다고 한다. “대략 예상한 것이지만 이제 51년쯤 남은 셈입니다. 아주 빨리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죠.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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