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공유 인프라 경영’ 첫발
3600개 주유소 유ㆍ무형 자산 활용
스타트업 등 비즈니스 적극 도와
물류ㆍ빅데이터 등 시너지 효과 기대
내달까지 ‘공유 아이디어’ 접수

# 2037년 어느 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기업가 나인호씨는 주유소 인근 사무실로 출근한다. 전기차충전소와 주차장, 물류창고, 편의점을 겸하는 이곳에서 간단히 요기한 뒤 다른 업체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류창고에서 그날 전국으로 보낼 물품을 확인한다. 사무실과 집이 비어있는 때가 많아 배달된 택배상품도 이곳에서 챙긴다. 주유소에선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도 빌릴 수 있다. 나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녀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인근에 사는 구도일씨에게 전기차 장거리 이동에 필수품인 차량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곳에서 빌릴 계획이다. 차량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판매하는 나씨는 주유소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공유 빅데이터를 활용해 젊은 운전자의 충전ㆍ주유 빈도수가 높은 지역 위주로 집중 홍보,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

20년 후 공유경제의 중심이 될 주유소의 모습이다. 허무맹랑한 상상 같지만 SK가 이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겠다며 21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 계획을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추진해온 ‘공유 인프라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공유 인프라 경영이란 유ㆍ무형의 기업 자산을 협력업체,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등과 나눠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에도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SK이노베이션이 21일 석유사업 자회사 SK에너지의 핵심 자산인 주유소를 공유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업모델 개발을 시작하겠다 밝혔다. SK에너지ㆍSK네트웍스 직영 450여개 주유소를 비롯해 전국 3,600여개 SK 주유소의 주유기, 세차장, 유휴부지 등 유형자산은 물론 사업구조, 마케팅 역량, 경영관리역량 등 무형자산까지 모두 공유 인프라로 내놓는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같은 유ㆍ무형 자산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이날부터 ‘주유소 상상 프로젝트’ 행사를 시작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인프라 공유를 위한 아이디어를 받은 뒤 심사를 거쳐 비즈니스 모델과 아이디어 각 8개를 선정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모델 선정자들에게 실질적인 공동사업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대학생에게는 공채 시 서류전형에서 가산점도 준다. SK 주유소를 운영 중인 개인사업자들도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기업 관계자는 “물류 창고나 운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신생 기업이 전국 3,600여개 주유소의 네트워크와 물류 시스템, 유휴부지를 활용하면 큰 투자 없이도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SK의 운영 시스템이나 사업 관련 빅데이터를 활용한 경영 컨설팅, 전국적인 망을 동원한 마케팅 등의 도움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하며, 이 같은 사회적 가치는 공유인프라 구축과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 등의 활동이 병행될 때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SK주유소 자산 공유는 최 회장의 공유 인프라 구상을 처음 사업 모델로 옮기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류 제품 공급에 한정됐던 SK주유소를 경제적, 사회적으로 공유함으로써 SK에너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단순한 자산 공유가 아니라 자산을 이용하는 양쪽 모두에게 효율성 증대, 새로운 수익원 확보 등의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공헌 활동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