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현 전 주베트남 대사

은퇴 후 베트남 달랏대학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 학교에서 제공한 그의 관사를 지난 11일 찾았다.

유태현(74) 전 주베트남 대사는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아직도 베트남의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골프장에서 멀리서 봐도 걸음걸이가 좀 어색하다, 특이하다 싶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한국이 베트남보다 낫다고 할만한 것들을 특별히 찾아보기 어렵다”며 “하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우월감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유 전 대사는 지난 2004년 7월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쳐 탈북인 468명을 전세기 2대를 동원, 한국으로 입국시킨 주역이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 영향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외무고시 7회로 입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등을 역임한 뒤 주베트남 대사를 마지막으로 2005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2009년부터 베트남 달랏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또 럼동성 명예 자문위원으로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뛰고 있는 그를 11일 만났다.

-수교 후 25년이 흘렀다. 감회는.

“복잡하다. 그 중 아쉬움이 가장 크다. 경제교류 수치를 보나 고위인사들의 교류를 보나 25년 동안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관계를 구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가장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는 나라다. 유교와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요소는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국민성,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지정학적으로 독도문제나 동북공정 같은 분쟁요소가 없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는 상대다. 특히, 껄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절대적인 우호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20㎡(약 6평) 남짓한 달랏대 관사에서 지내고 있는 유 전 대사는 학교에서 예의 바른 학생들과 어울리거나,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들과 흥정하다 보면 자신이 한국에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라고도 했다.

-왜 더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보나.

“부끄러운 과거에 솔직하지 못한 것과 함께 한국인들의 우월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한국이 소득 수준이 더 높다는 것 외에 베트남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안 보인다.”

-베트남인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고도 독립을 쟁취했다. 프랑스 식민 지배를 무력으로 종식시킨 나라다. 미국이 2,400억달러의 전비를 쓰고 2차 대전 총화력의 4배에 달하는 800만톤의 포탄을 투하하고도 굴복시키지 못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1973년 미군 철수를 결정한 파리협정 공로로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지만 레 둑 토 베트남 외상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아시아인 최초의 평화상 수상 명예를 거부했다. 베트남을 품위 있는 나라로 보는 이유이다.”

은퇴 후 베트남 달랏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

-과거는 과거라고 이야기한다.

“전쟁 당시 약간의 원조를 제공한 북한에 대한 고마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베트남이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힌 한국의 참전을 잊을 리가 없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사 재임 때 중부 지역 출장을 가면 공안(경찰)이 숙소 주변에 깔렸다. 한국인에 원한을 품은 해당 지역 피해자 가족들의 복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관계 증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제대로 된 베트남에 대한 인식이다. 전쟁과 관련해 사과나 보상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해서 묵은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우리도 성숙해지고 양국 관계도 긴밀해지는 길이다.”

달랏(베트남)=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유태현 전 대사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 장을 보거나, 약속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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