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조달 계획 불투명한 선심성 정책들
5년 정권이 ‘산타’ 자처하면 곳간 빌 우려
정치 걷어 낸 정교하고 현실적 접근 절실

‘예산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를 하면서 보여 준 행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여야가 겉으로는 싸우는 척하다가 밀실에서는 마구잡이로 지역구 예산을 서로 끌어댔다. ‘코끼리 발톱’이라는 비유도 있다. 처음에는 예산이 발톱 크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코끼리처럼 커져 있더라는 말이다.

국책사업에서는 확실한 재원조달 계획이 없으면 정책이 애초에 성립하지 않고 진행해서도 안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일단 사업을 벌이고 보자는 심산인 듯하나, 시장 논리를 역류하는 선심성 정책들이 결국 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해외사례는 허다하다. ‘공무원 천국’이라던 그리스의 청년들이 집시처럼 유럽을 떠도는 게 대표적이다.

소득을 늘려 경제를 살리자는 J노믹스에 5년간 최소 178조원이 들어간다지만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계산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각종 정책의 재원조달 계획이나 전력수급 계획 등에서 짜 맞추기 식으로 수치와 통계를 왜곡하는 듯한 인상도 없지 않다. ‘문재인 케어’에는 5년간 30조6,000억원이 필요하지만, 의사들은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왔다. 실제로는 85조원이 필요하단다.

원자력발전소를 줄이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발표도 어딘지 허술하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설비투자에 110조원의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한다. 공공 51조원, 민간 41조원, 정부 예산 18조원이라는데 이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알 수 없다. 더욱이 피할 길이 없는 전기료 인상에 대한 얘기는 빠져 있다.

세금 낭비도 많다. 월성원전 1호기의 경우 10년 가동연장을 위해 부품교체비 7,000억원을 투입했으나 5년밖에 가동하지 않는다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신고리 5ㆍ6호기도 공사 일시 중단 비용이 1,000억원을 넘어간다. 신규 원전 백지화에 따라 건설 중단이 된 원전에도 1조원 가까운 돈이 투입됐다. 쉽게 내동댕이쳐 버리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다. 북한 핵무기보다 원전이 더 무서운가.

때문에 5년 시한부 정권이 ‘산타’를 자처하면서 비가역적 정책을 쏟아 내면 나라 곳간이 비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 차원에서 의욕 넘치는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닮아간다. “양극화 해소를 국정 과제로 설정한 것 또한 노무현 정부였다. 제대로 착안한 목표였으나 노무현 정부는 바로 이 때문에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극화의 주범으로 재벌을 지목했고, 재벌과 각을 세우면 성장 전선에 이상이 생기는 모순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념의 적실성과 빈곤한 업적 사이의 간극을 노무현 정부는 말로 메웠다. 그것이 중요한 통치양식이었다. 개혁의 내용을 우선 발설해 놓고(선언), 시끄럽게 만들고(여론 형성), 반대파를 말로 폭격하는(제압) 방식을 썼다.” (송호근의 저서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의욕이 결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6개월간 일자리에 목을 맸는데도 결과는 참담하다. 청년실업률은 매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장관들이 일자리를 외치고 다녔는데도 그렇다. 오히려 정부의 정책이 환경미화원 경비원 음식점 종업원 등 사회적 약자를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 식당에 가 보면 종업원이 부족해 서빙 속도가 크게 느려진 것을 쉽게 느낄 것이다. 허우적거릴수록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 일자리 딜레마다.

정부가 예산을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은 정치적 속셈 때문이다. 정치편향을 걷어 낸, 좀 더 정교하고 현실과 마주한 정책이 절실하다. 디테일에 실패하면 결국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낚싯배 사고에 대해 국가의 무한책임 대상이라는 것은 난센스다. 정작 무한으로 책임져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국민의 밥그릇이다. 5년 뒤면 국민들은 ‘누가 세금을 다 허비한 건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예산 적폐세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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