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깊이 알지 못한다. 아직 말을 건넨 적이 없다. 당연히 이름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짐작하는 것이라곤 대략 175cm쯤 되어 보이는 키와 선한 인상을 가진 30대 후반의 남성이라는 것 정도다. 그는 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른다. 살가운 정은커녕 통성명을 포함한 아무런 앎의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그를 기억하고 지낸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모르는 이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온 지 1년 가까이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그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월 초순쯤, 시린 눈발이 꽤 휘날리던 날로 기억한다. 사무실로 가기 위해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마악 인도에 발을 내딛던 중이었다. 저만치 앞에서 한 남성이 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문득 눈에 띄었다. 눈에 든 이유는 그가 흰 지팡이를 든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사방이 빙판이고 눈길인지라 먼저 그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의 걸음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에, 그리고 고른 박자로 왼쪽 오른쪽 툭툭 땅바닥을 치는 지팡이 소리의 경쾌함 등에 색다른 감정들이 섞이면서부터 염려의 마음은 저만치 사라졌다.

그대로 내 앞을 스쳐 홀연히 지하철 역사로 사라진 그와의 첫 대면은 아주 짧았으나, 순간적으로 든 측은지심을 거두고 보니 남은 잔상의 느낌이 꽤 짙었다. 그의 감은 두 눈과 지팡이보다는 하얗고 맑은 얼굴빛과 매우 익숙하고도 걸릴 것 없는 몸동작이 더 오랜 형상처럼 남았다고 할까. 신기한 것은 그날 이후 거의 같은 자리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은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의 데쟈뷰 연기처럼 잊을 만하면 그가 나타났다. 계절에 따라 옷 겹의 두께만 변할 뿐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모습이었다. 지팡이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한쪽으로 머리를 약간 기울인다는 것과 걸음의 속도까지 항상 같은 모습으로 그는 나타났고, 다시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비켜섰고 그가 지나가는 동안 고개를 따라 돌리며 속으로 안부를 물었다. 말을 걸거나 손을 흔드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지만 속맘으로나마 웃음을 가득 담아 보내곤 했다. 그가 내 인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인연이 참 많다. 언젠가부터 이런 상황을 ‘우연한 인연’이라 명명한 뒤 나름의 의미부여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 일부러 정을 맺으려 하지는 않아도 존재함을 알기에 그의 일상을 인지하거나 속으로나마 안부를 건네는 이들이다. 지금도 하루의 시작과 더불어 끝을 이루는 시간 사이 거리를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다 고개를 바닥에 파묻기보다는 스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주로 살핀다. 사진을 업을 삼은 지 오래인 데다 주로 사람과 삶에 대한 내용들을 담아오다 보니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주로 살피는 일을 하고 있는 요즘에 이르러는 이 생각과 행동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인연이 있든 없든 한 사람 한 사람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1년 남짓 머물던 충무로역 근처 사무실을 비울 준비를 하는 요즘 그의 안부가 다시 궁금해진다. 지난달에 그를 봤을 때 슬쩍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두기도 했었다. 양해 없이 그런지라 미안한 맘이 컸지만 수없이 보낸 인사값(?)이라 자위하며 혹여 다시 못 ‘스칠’ 수 있는 인연의 아쉬움을 이제 대신하게 된다. 늘 그의 안부가 그리울 것이다.

임종진 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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