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인사이드]

“남녀노소 좋아하는 우유 만들자”
1974년 첫 출시 이후 1등 고수
배불뚝이 용기 트레이드 마크로
1992년 한화그룹 분리과정서
형제간 31차례 법정다툼
김호연 회장 경영 등한시한 채
총선출마 등 6년간 정치적 외유
투게더 등 스테디셀러 보유에도
연매출 수년째 8000억대 제자리
“사업 다각화… 신성장동력 절실”

빙그레 본사 전경. 빙그레 제공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처음 나온 건 43년 전이다. 1970년대 초반 정부가 우유 소비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흰 우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때 ‘아이도 어른도 좋아할 만한 우유를 만들어보자’는 궁리 끝에 탄생한 게 바나나맛 우유다.

빙그레(당시엔 대일유업) 연구팀은 밤낮으로 우유와 궁합이 맞는 과일을 찾았고, 최종 후보군에 오른 게 바나나였다. 그 시절 바나나는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고급 과일이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달콤한 바나나 향과 우유의 적절한 조화를 찾아냈다.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았다.

43년 스테디셀러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빙그레 제공

바나나맛 우유 하면 떠오르는 배불뚝이 용기도 히트작이다. 바나나맛 우유는 독특한 용기 모양 때문에 ‘단지 우유’ ‘항아리 우유’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회사는 바나나맛 우유 구상단계부터 한국적이면서 새로운 모양의 용기를 고집했다고 한다.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던 연구팀은 우연히 찾은 도자기 박람회에서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보게 됐고, 그 유려한 곡선을 우유 용기에 차용하게 됐다고. 이렇게 탄생한 배불뚝이 용기는 출시 이후 용량 240㎖와 모양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바나나맛 우유는 1974년 처음 나온 이후 국내 가공유 시장에서 1등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브랜드로, 빙그레에는 지금도 매출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효자 상품이다. 최근엔 중국 등에서 큰 인기를 끌며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92년 한화에서 분리되며 형제간 갈등 촉발

빙그레의 시작은 50년 전인 1967년 대일양행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이 회사가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이자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의 김종희 창업주에게 맡아달라 요청을 했다. 1973년 한화의 인수 이후 본격적인 투자를 통해 바나나맛 우유와 고급아이스크림 ‘투게더’, 떠먹는 요구르트 ‘요플레’ 등을 생산하는 유력 식품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1982년 ‘빙그레’로 사명을 변경했고, 1992년엔 한화그룹에서 분리됐다. 그 분리과정에서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형인 김승연 한화 회장은 3년 6개월 동안 31차례에 걸친 지난한 법정다툼을 벌였다. 김종희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두 아들의 지분 분할을 두고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형제의 갈등은 1992년 김승연 회장이 적자경영의 책임을 물어 김호연 회장을 당시 한양유통의 대표이사직에서 퇴직시킨 것이 도화선이 됐다. 동생은 형이 상속 재산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즉각 반발했다. 김승연 회장은 1981년 당사자 간의 합의 등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상속재산이 분배됐고 10년 시효가 끝나 상속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긴 시간 다투던 형제는 1995년 칠순을 맞은 어머니의 중재를 통해 전격적으로 화해를 했다.

빙그레 아이스크림 ‘투게더’ 생산모습. 빙그레 제공
김호연 회장 6년간의 정치 외유

한화에서 분가돼 나올 당시 빙그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1992년 빙그레의 부채비율은 4,000%가 넘었다. 10년 넘게 생존을 위한 쉼 없는 구조조정이 전개됐다. 기업의 규모를 키워보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던 베이커리와 냉동식품, 라면사업 등을 아쉽게 접어야 했다.

빙그레 경영은 적자 사업 부문을 다 들어낸 2000년대 중반 들어서야 안정을 찾게 됐다. 하지만 2008년 김 회장은 돌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총선 출마를 위해 회사를 떠난 것이다. 정치에 도전한 김 회장은 한 차례 고배를 마셨고, 2010년 재보궐선거에 다시 나와 꿈꾸던 금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2년도 채 안 된 2012년 19대 총선에선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의 정치 외유는 2014년 3월 빙그레 등기이사직으로 복귀하면서 끝났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빙그레

김 회장이 정치해보겠다고 떠나있던 6년간 빙그레는 뚜렷한 성장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2014년 도농공장에서 인명피해가 동반된 암모니아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터지기도 했다.

김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후에도 빙그레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경쟁 식품업체들은 1조원을 넘어 커가고 있는데 빙그레의 연간 매출 규모는 수년째 8,000억원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영업이익은 2012년 668억원을 찍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지난해엔 306억원으로 떨어졌다.

빙그레는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바나나맛 우유 외에 요플레 투게더 메로나 꽃게랑 등 다양한 스테디셀러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빙그레는 제2의 바나나맛 우유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도 시도했지만 뾰족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최근엔 되레 바나나맛 우유 마케팅 강화에만 더욱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바나나맛 우유라는 대표 브랜드가 있는 건 엄청난 강점이지만 역으로 바나나맛 우유가 휘청이면 회사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사업 다각화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빙그레의 전체 매출에서 국내 비중은 90% 이상이다.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그 실적이 미미하다.

김 회장은 백범의 손녀사위

김 회장의 부인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다. 김 회장 부부는 슬하에 동환(35), 정화(34), 동만(31)씨를 뒀다. 백범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김 회장은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남 동환씨는 언스트앤영 한영회계법인을 거쳐 2014년 빙그레에 입사해 일을 배우고 있다. 현재 3남매 중 빙그레에서 일하는 이는 장남뿐이다. 3남매는 그룹 핵심인 빙그레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계열사 ‘제때’를 통해 빙그레 주식 2%를 우회 소유하고 있다. 빙그레의 냉장 냉동 제품 운송 물류 업체인 제때는 지분 100%를 3남매가 소유(장남 33.4%, 장녀 33.3%, 차남 33.3%)하고 있어 외부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일각에선 향후 후계 승계의 디딤돌 역할을 할 회사가 아니냐 추측하기도 한다.

빙그레 관계자는 “계열사인 제때는 내부거래 비중도 40% 이하 인데다 빙그레에 대한 지분율도 2%에 불과하다”며 “제때를 후계구도와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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