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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평범한 엘리트 비범한 범인

입력
2017.12.17 13: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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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용모순 국내 교육제도의 근본특성

기득권층 자녀 ‘엘리트’ 만드는 특혜제도

공정 사회에 적합한 교육제도로 바꿔야

‘평범한 엘리트’와 ‘비범한 범인’, 둘 다 형용모순적인 표현이다. 엘리트는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녀서 엘리트로 불리며, 범인은 특출한 능력이 없어서 범인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표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근본 성격을 이 두 가지 형용모순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본다.

‘원칙적으로’ 나는 엘리트 교육에 반대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면 그런 재능 계발에 적합한 특수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그것이 ‘공정한 기회의 평등’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사회발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고 싶은 동등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 재능이 뛰어날 수도 있고 평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재능을 얼마나 가지고 태어났건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함으로써 인생을 보람차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그러므로 사회는 모든 아이들에게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비범한 아이들의 재능을 계발하는 데 보통교육이 적합하지 않다면 그들의 재능에 맞는 특수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지금 실행되고 있는 제도는 이런 엘리트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국어, 수학, 영어 등 전 과목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들을 ‘평범한 엘리트’로 만들며, 전체적으로는 평범하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뛰어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별 볼 일 없는’ 범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와 수업을 통해 발견한 소질과 적성을 연마하는 데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아인슈타인, 러셀, 피카소, 헤밍웨이, 가우디 그리고 빌 게이츠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소위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12년 이상 열정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의 열정을 어디에 쏟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오로지 효율적인 성적 기계가 되어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이라고 세뇌 당한다.

게다가 이렇게 길러진 ‘평범한 엘리트’들은 그들에게 과분한 보상을 해주는 사회구조로 인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자신은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에 모든 점에서 우월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성적이 뒤쳐진 이들은 열등하기 때문에 무가치하며 경멸해도 좋은 존재라는 편견 말이다. 이런 편견은 갑을문화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신분사회를 조성한다. 요컨대 현행 엘리트 교육은 대체로 부유하고 힘 있는 기득권층이 그들의 자녀를 ‘억지로’ 엘리트로 만들어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게 해주는 특혜제도에 가깝다.

어떤 아이가 과학이나 문학 혹은 음악이나 스포츠에 열정이 있다면, 많은 분야에 관심을 분산시켜 그런 열정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데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그런 아이에게 성적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신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할 것이며, 재능까지 있다면 더욱 더 유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인 성공을 미끼로 열정 없는 노력을 유인하고 영혼 없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현행 엘리트 교육은 근본적으로 개혁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누리고, 자신의 소질과 역량에 적합한 일을 통해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며, 어떤 일을 하든지 평등한 인격체로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에 적합한 교육 제도가 필요한 때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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