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미국 페미니즘 수난사
“동등한 권리는 나쁜 엄마 만들어”
정부, 기업, 언론이 여성의 야망 공격
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무사하지 않다. 페미니즘을 오염시키고 고사시키려는 반격(백래시ㆍBacklash) 탓이다. “다른 모든 것 이전에 나는 인간이라는 진술”(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이 페미니즘의 온건한 정의라고 할 때, 그 반격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건 아니다’고 편가르는 야만이다.

페미니즘의 역사가 그랬다. ‘반격, 패배, 리부트, 다시 반격…’의 도돌이표에 갇혀 아주 조금씩만 전진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 성취를 달성한 듯 보일 때면 어김없이 백래시가 선제적으로 작동했다. 페미니즘과 그 수혜자에게 경멸과 혐오가 쏟아졌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58)가 1991년 쓴 ‘백래시’는 198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 수난사다. 1970년대 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이 지나가고 자유와 평등이 넘실대는 듯 보인 때였다. 보수 정부와 사법부, 기업, 학계, 언론이 가한 은밀하고도 집요한 반격을 저자는 질릴 정도로 촘촘하게 기록하고 논박한다. 804쪽짜리 이 벽돌책은 그저 또 하나의 페미니즘 책이 아니다. 출간된 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걸작이자 25년간 미국에 영향을 미친 책 25권(2007년 USA투데이)에 꼽힌, 수없이 인용되는 고전이다.

28년 전 미국 이야기를 읽을 가치가 있는 건 달라진 게 없어서다. 모든 페이지가 쓰라린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동등한 교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 페미니즘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다.” 반격 논리는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미국 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의 1980년대 표지.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엄마가 일하면 애는 누가 키우냐고 위협하고(왼쪽) 여성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남성의 분노를 부추기거나(가운데), 페미니즘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아르테 제공

독자 감소를 고민하던 미국 언론은 야망 있는 여성을 공격하고 텅 빈 자궁을 걱정하는 도덕극 같은 보도에서 살 길을 찾았다. “많은 여성이 직업보다 가정이 먼저라고 말한다”(뉴욕타임스ㆍ보도에 등장한 여성 샘플은 겨우 20명이었다), “많은 직장 여성이 일보다 임신을 선택해 새로운 베이비붐이 일고 있다”(타임ㆍ정부 집계 출산율은 그대로였다), “일하는 여성들 사이에 불임이 늘고 있다”(뉴욕타임스ㆍ타임과 정반대 보도였다). 여성을 좌절시키는 정치적 힘에는 눈 감고 여성은 차별이 아닌 모성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내모는 보도는 요즘도 종종 등장한다.

할리우드도 동참했다. 여성은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외로운 솔로 아니면 신분 상승에 눈이 먼 마녀 아니면 구타ㆍ고문ㆍ살해 피해자로 나왔다. 행복한 유부남을 유혹해 파멸로 몰고 간 싱글 직장 여성이 조강지처에게 살해 당하는 ‘위험한 정사’(1987)는 4개월 만에 흥행 수익 10억달러를 벌었다. 글렌 클로즈가 맡은 여주인공을 향해 “저X을 죽여!”라고 외치는 것으로 여성혐오를 발산하는 ‘참여형 관람’이 남성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당시 영화의 메시지는 천편일률적이었다. “공적 책임과 개인적 행복은 양립할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반격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있는 건 아니었다. “반격 현상은 모두 연관돼 있지만 누군가 전체를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니다. 반격에 가담한 사람 중에는 자기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 때문에 더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반성과 지향 없는 “나는 페미니스트다”는 자아도취적 선언이 위험하다는 교훈이다.

18세기까지 낙태는 미국에서 합법이었다. 페미니즘이 등장한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얘기가 달라졌다. 낙태 불법화를 주도한 건 경제성장 수혜를 누리지 못한 베이비 부머 마지막 세대의 이른바 ‘루저’들이었다. 철학과 생명윤리로 포장했지만, 여성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성관계ㆍ결혼을 거부당할까 두려운 게 진짜 속내였다. 여성의 자궁은 사회의 것으로, 여성은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취급받는 건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낙태 합법화에는 선을 그은 대한민국의 얘기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여성의 자궁은 그러나 보호받지 못했다. 화학회사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는 고소득 생산직에 지원하려면 난소를 떼내라고 여성들에 요구했다. 언젠가 잉태될지 모르는 태아를 화학물질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남성의 정소는 예외였다. 여성 몇 명이 생계 때문에 난소를 포기했지만, 회사는 불임수술 명령을 둘러싼 논란이 귀찮다며 생산라인을 없애버렸다. 난소도 일자리도 잃은 여성들에게 회사는 말했다. “너희가 선택한 일이잖아.” 모성 신화에 치이고 차별에 절망하는 대한민국의 여성들도 수없이 듣는 말이다.

수많은 백래시 희생자들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페미니즘은 죄가 없다. 당신이 불행한 건 페미니즘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책은 백래시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진 않는다. 답은 결국 페미니즘에 있다. 페미니즘은 주춤하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지켜내는 것, 그 길뿐이라고 저자는 응원한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수전 팔루디 지음・황성원 옮김・손희정 해제
아르테 발행・804쪽・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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