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지지자에 "이견 허용" 쓴소리
비난 쏟아지자 "집문 걸어 잠그고" 함구
건강한 비판 막으면 촛불ㆍ민주정신 역류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단법인 4월회 초청특강에서 '정당과 의회가 바로 서야 민주주의가 진전한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스1 제공

두 달 전 '이니 팬덤의 레드라인'이란 칼럼을 쓰고 엄청난 욕설 댓글에 시달렸다. 한때 여성비하 등 왜곡된 젠더 의식을 드러낸 탁현민 청와대 비서관의 경질을 청와대에 건의하겠다는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의 국회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글이었다. 요지는 문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이 정 장관의 언행을 '망동'이라고 비난하며 되레 그를 경질하라는 청원을 쏟아 내고 있는데, 이런 청원은 문 대통령에게 도움은커녕 되레 부담만 지우게 되니 팬덤도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심사를 긁은 듯, 짧은 글에 달린 수백여 댓글의 대다수는 앞뒤 없는 저급한 막말이었다.

이 일이 다시 생각난 것은 얼마 전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성북구청에서 ‘지방분권' 을 주제로 강연하던 중 질의응답 과정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해 거센 반발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안 지사는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왜 말이 많냐, 닥치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공론의 장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지지"라며 "그런 식으로는 정부를 지킬 수 없고, 우리 '이니'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페이스북 등 SNS와 기사 댓글에는 '적폐 매국노' '알맹이 없는 몽상가' 등의 극언이 빗발쳤고 대권 꿈 포기는 물론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글도 적잖았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연정론을 내세워 판세를 혼란스럽게 만든 안 지사가 적폐청산 국면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입바른 소리를 내는 것이 거슬렸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정치보복 운운하며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안 지사가 '자기 정치'만을 위해 딴 얘기를 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네거티브 공방이 한창이던 대선 후보 경선 때 "문 후보 진영의 비뚤어진 태도가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고 반격했던 안 지사는 이번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더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분명해 오해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지만, 벌꿀오소리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그들과 생산적 논쟁을 이어 갈 수 없다는 판단이 더 앞섰을 것이다.

안 지사의 속마음은 며칠 뒤 4월회 초청강연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를 말해 달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말하면 싸움을 붙이게 된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면 집에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하겠다"고 답했다. “때가 되면 하겠지만 지금은 같은 당의 같은 팀으로 문 대통령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힘을 모아드려야 한다"는 '모범답안'도 내놓았다. 큰 꿈을 꾼다면 문 대통령 지지층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는 언행은 삼가라는 주변의 충고가 많았던 것 같다.

대나무숲의 외침처럼 '문을 걸어 잠가야만' 그가 털어놓을 얘기는 뭘까. 노무현 정부의 의욕과 좌절을 생생히 지켜본 그는 70%대의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과 환호에 묻힌 문제나 진보정권을 이어 갈 방안을 누구보다 잘 짚어낼 사람이다. 그 대상은 한ㆍ중 사드 논란과 북핵 문제에서부터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개혁의 방향과 속도일 수 있고, '내로남불'과 '캠코더' 등의 딱지가 붙은 인사시스템체계의 개선이 될 수도 있다. 또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하는 정치력, 전리품을 요구하는 노동계 등 지지층을 다루는 지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입을 닫았다. 김관진을 석방한 법원에 '떼창 욕' 운운했던 민주당 중진의원마저 "서생 같은 훈시가 웬 말이냐"고 비아냥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사정이 이러니 요즘 학계조차 문 대통령의 공약이나 정책을 건드리는 기고나 토론회 참석 요청에 손사래를 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희정도 문을 걸어 잠가야 말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워 온 우리가 아닌가.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