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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열심히 살뿐 아니라 잘 살아야

입력
2017.12.13 16: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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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 ‘열심히’와 ‘잘’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주제를 조금 비틀어서 보고자 합니다. 지난번에 ‘열심히’와 ‘잘’에 대해서 봤음에도 이번에 또 이 주제를 보고자 함은 저로서는 올해의 마지막 칼럼이기에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한 해를 잘 살았는지, 잘못 살았는지 보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뭘 하는 것(Doing)은 잘 하기보다 열심히 해야 하지만 사는 것(Living)은 열심히 살뿐 아니라 잘 살아야 함을 얘기하기 위함입니다.

삶은 일보다 크고 중요합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삶이 더 중요합니다.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지만 일은 삶의 한 부분이어야지 일이 삶의 전부여서는 안 되지요. 요즘은 그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일중독이라는 말을 많이 하였고, 특히 남자들은 실제로 일중독자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게으른 것이고, 삶을 잘 못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하고, 일 때문에 가정도 소외되고 인간관계도 소홀하게 함으로써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지요.

또 요즘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옛날에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어라 일만 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분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저도 한 때 도시에서는 도시 노동자와 시골에서는 농촌 노동자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는데, 시골에서 살 때는 해 뜨면 들에 나가서 일하고 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고달픈 삶이었지요. 하루는 시골에서 할머니들과 하루 종일 마늘 캐는 일을 하였는데 같이 일하던 할머니 한 분이 느닷없이 ‘우리 같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소여. 노상 먹고 일만 하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사람이 아니라니! 일이 이렇게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다 준다니! 저는 이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은 신성한 것이니 뭐니 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칭송하지만 삶이 일밖에 없을 때 일이 이렇게 삶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때 깊이 각인되었지요.

그리고 단순 노동은 그렇게 많은 능력을 요구하지 않지만 요즘의 많은 일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능력자를 우대하는 사회는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능력이 있어야 행복할 거라는 의식을 심어주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재능이 많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 많아서 재능기부를 한다면 기부할 재능이 없는 사람보다 얼마나 복됩니까?

문제는 재능이 많은 것이 아니라 재승덕(才勝德)한 것이지요. 재승덕이란 재주만 앞세우고 덕은 보잘것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덕이 재주에 못 미치는 것을 말함이지요. 이는 누구의 손에 칼이 들리느냐와 같은 것입니다. 칼이 의사에 손에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칼이 되지만 강도의 손에 있으면 흉기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사람은 능력보다는 능력을 옳게 사용할 수 있는 덕이 있어야 하는데 능력이 우선할수록 후덕(厚德)하지 못하고 박덕(薄德)하게 되기 쉽고, 이럴 경우 강도의 손에 들린 칼처럼 능력은 자신의 삶도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의 삶도 망가뜨리게 되지요.

이제 보름여만 지나면 2017년 한 해도 지나갑니다. 올 한 해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한 해를 우리는 열심히 살았습니까? 열심히 살았지만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습니까? 열심히 살았는데 후회가 있다면 잘 살 것은 아닙니다. 성실히는 살았지만 지혜의 덕이 부족했을지 모릅니다.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방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덕이 부족했을 지도 모릅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한 덕분에 관계가 어긋났을 지도 모릅니다. 한 해를 잘 돌아보면 새로운 한 해가 잘 열릴 것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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