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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 "두렵지 않다고 카메라에 주문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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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 "두렵지 않다고 카메라에 주문 걸어"

입력
2017.12.13 16:1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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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은 “며칠 전에도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 동료들과 회식을 했다”며 “촬영 현장 분위기가 좋았던 드라마라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정려원은 “며칠 전에도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 동료들과 회식을 했다”며 “촬영 현장 분위기가 좋았던 드라마라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배우 정려원(36)은 생전 처음으로 드라마 촬영 카메라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나는 네가 무섭지 않다", "나는 네가 두렵지 않다"... 2002년 KBS아침극 '색소폰과 찹쌀떡'을 시작으로 15년의 연기 내공을 지닌 그다. ‘카메라 울렁증’이라도 생긴 것일까. 민감한 사회문제인 성범죄를 다룬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정려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루는 소재도 까다로웠거니와 자칫 상처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13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 첫 촬영부터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10여 편의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이번처럼 매 장면마다 70% 이상의 분량을 소화하긴 처음이었다. 성범죄를 수사하는 마이듬(정려원) 검사가 워낙 밝은 데다 사건과 공감을 못하는 설정이라 "너무 무례하게 보일까 봐"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 촬영마다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배우니까 카메라 앞에서 얼면 안 되는데"하는 마음에 카메라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간혹 촬영감독은 정려원의 기이한(?) 행동에 "왜 그러느냐?"고 묻곤 했다. 정려원은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단다. "시동을 거는 겁니다. 부릉부릉~"

마이듬 검사는 그간 드라마에서 봐온 수동적이고 정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출세욕에 사로 집혀 있고 속물근성까지 보이는 사고뭉치였다. 능동적으로 사건을 읽고 판단해 해결하는 ‘척척박사’이기도 했다. 주로 남자주인공을 통해 표현된 캐릭터다.

"요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플랫폼도 많아졌잖아요. 마이듬 검사는 제가 원하는 여성상이기도 해요. 그래서 비호감으로 비춰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민을 더 많이 했어요. (‘마녀의 법정’의) 정도윤 작가님도 '안티히어로' 같은 인물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배우 정려원은 최근 종방한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 검사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KBS 제공
배우 정려원은 최근 종방한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 검사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KBS 제공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커져갔다. 최고 시청률 14.3%(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지상파방송 드라마는 시청률 10%의 벽을 넘기 힘들다는 방송계 속설도 깼다. 정려원의 탄탄한 연기력은 주변 친구들이 먼저 알아봤다. 그들은 예전엔 정려원이 출연한 드라마를 보면 옷이나 가방 브랜드를 물어보기에 바빴다. '마녀의 법정'은 달랐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야?"라고 먼저 물었다. 한 회를 놓치면 인터넷이나 IPTV로라도 챙겨보는 친구들이 생겼다.

상처받는 게 싫어 일절 보지 않던 인터넷 댓글도 읽었다. 자신의 연기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는 인터뷰 도중 휴대폰에 캡처해 놓은 댓글 하나를 보여줬다. '마이듬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쓰여 있었다.

정려원 역시 변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드라마에서 가상이지만 성범죄 전담부의 '원스톱 시스템'(한 명의 검사가 사건이 끝날 때까지 책임지는 방식)이 도입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검사가 바뀔 때마다 여러 번 진술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려원은 “휴대폰 문자 대신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좋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정려원은 “휴대폰 문자 대신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좋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정려원은 어느새 가슴으로 연기하는 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2005), MBC '넌 어느 별에서 왔니'(2006), 영화 '김씨 표류기'(2009) 등을 통해 배우로 성장하며 내면의 성숙함도 키웠다. 그는 2005년부터 작품이 끝날 때마다 촬영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전하고 있다. 이번에도 120여명의 스태프에게 손편지를 썼다. "작품을 할 때마다 촬영 현장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진짜 고생하시는 분들인데 이름도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게 아쉬웠거든요."

어느덧 그도 데뷔 17년째를 맞았다. 걸그룹 샤크라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잊힌 지 오래다. 그러나 그는 "왜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꼭 떼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노래와 연기 모두 잘하는 사람에게 응원을 더 보내줬으면 한단다. "엄정화, 임창정 선배를 존경한다"고 했다. "샤크라는 제가 탄생한 곳이에요. 그 꼬리표가 싫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요새 그룹 2PM의 이준호와 샤이니의 최민호는 눈에 띄는 후배라서 응원하고 있어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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